10월 1일
로마교회에 보내는 인사 (로마서 1:1-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의 아이덴티티
사도 바울이 활동할 당시 로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소수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가 있었는데 이 교회의 구성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직접 받을 기회가 없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의 도리를 확실하게 가르치고자 하여 편지를 쓰면서 먼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라고 소개하였다.
디트리히 본회퍼목사님은 독일의 나치 정권 시대에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가 39살의 나이에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 형무소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시를 기록하였다.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어떤 사람이건, 오 하나님,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오늘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 보자.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삶의 과제와 목표는 누구로부터,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생각해보자.
10월 2일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 (로마서 1:8-15)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방법
로마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 세워진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 2장10절에 의하면 오순절에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왔다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중에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로마로 돌아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고한 결과로 로마에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도 바울의 전도활동으로 복음을 접한 이들 중 당시의 지역적 이동이 심했던 상황 속에서 로마로 이주해간 이들이 그곳에서 기독교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을 것으로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소식이 바울에게까지 전해지자 기뻐한 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그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여러 번 로마에 가고자 했으나 사정이 허락지 않아 방문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을 편지를 통하여 전달하고 있다.
바울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다(행27,28장). 만일 그가 혼자 로마로 향했더라면 그를 죽이려하는 열성 유대교인들의 위협과 약 4000km의 먼 거리의 여행의 어려움을 감당해야 했을 터인데 죄인의 신분이었으므로 오히려 로마 군인들의 호위 하에 로마까지 안전하게 가게 된 것이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 바울이 그렇게 가기를 원했던 로마에 죄수의 몸으로 오히려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며 가게 하시는 것이 바울의 선교계획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우리의 열정과 기도가 때로 막히는 것 같아도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어 가신다.
10월 3일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 1 (로마서 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1517년 비텐베르크에서 사역하던 마틴 루터가 당시 천주교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토론해보고자 95개의 논제를 적어서 비텐베르크 성교회 벽에 걸어 놓았던 것으로부터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되었다. 마틴 루터의 핵심적 신학사상이자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는 말씀에서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알려주고자 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로마서는 외형적으로 볼 때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이지만 그 안에 있는 복음의 능력으로 인해 기독교 역사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사람들이 로마서를 통해 회심하였다.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2,13절 말씀을 통해 방탕한 생활에서 돌이켜 성자가 되었고, 마틴 루터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롬 1:17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종교개혁에 헌신하였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예배 중 누군가가 마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것을 듣다가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서는 죄를 지으면 고소를 당하고, 재판을 받고, 손해배상을 하던지, 감옥에 가던지 자신의 죄 만큼 자신이 값을 치러야 한다.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하나님도 인생들의 죄를 심판하시고 죄의 값을 지불하게 하시는데, 그 죄의 값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갚도록 하셨다. 누가 나의 금전적 빚을 대신 갚아준다거나, 나의 죄를 대신해서 감옥에 간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할까? 하물며 내가 죽을죄를 지었는데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은혜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고 가는 셀 수 없는 무수한 인생들의 죄를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과 바꾸며 대신 갚아주셨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이제는 죄가 없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산방식, 죄를 처리하는 방식이 세상의 법과는 너무나 달라서 사람들은 이 쉬운 은혜의 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10월 4일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 2 (로마서 1:14-17)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열성 유대교인이었던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잡아내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중 빛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 후 일생을 복음전파에 헌신하였다.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변화된 바울은 모든 사람들 –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 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빚진 자의 심정이 되어 당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써 온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흘려보내기를 간절히 원했다.
예수님은 나무에 매달려 돌아가셨다. 그런 이를 메시아라고 믿고 고백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일이었다. 구약에서는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했으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의로우신 구원 방법임을 깨달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원의 복된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할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공의의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묵과하고 덮어버리실 수 없었지만 사랑의 하나님이시라 인류의 죄를 그대로 다 처벌할 수도 없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시게 하셔서 그로 하여금 인류의 죄를 대신 갚게 하는 방법을 택하셨고,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공의도 세워지고, 하나님의 사랑도 이루어졌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은 그 믿은 믿음 때문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고 살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10월 5일
하나님의 심판 (로마서 2:1-11)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하나님이 주실 상급
예수님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눅6:41-42)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남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되기 쉽다. 다른 이의 잘못은 잘 찾아내고 쉽게 비난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잘 깨닫지 못하고, 깨달아지는 잘못도 스스로 합리화하곤 한다.
사도 바울도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우리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모든 판단과 정죄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단지 하나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기까지 인내로 기다려주시는데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온 세상 모든 인생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데, 악을 행한 자에게는 환난과 곤고로, 참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갚아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선한 자들이 고난을 당하고, 불의한 자들이 오히려 잘 되고, 정의가 사라진 것 같아 보일 때에도 낙심하지 말자.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과 악을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이다. 그 심판의 날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상급이 무엇일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매일의 삶을 경건함 가운데 인내하며 선을 행하며 살아가자.
10월 6일
하나님의 의 (로마서 3:20-26)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유대교에서 개종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오랜 동안 율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바울은 이들에게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올바른 믿음 위에 설 수 있게 하고자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주제는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의이다. 로마서에서는 “의롭다”는 단어가 이런 저런 모양으로 40회 이상 나온다.
본래적 죄인으로서의 인간은 율법을 통해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율법에 정통한 학자였고 그것을 지키는 일에 전심전력했던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하며 탄식하고 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율법을 주심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진 자신의 죄의 성품을 깨닫게 하셨고,
신약에서의 하나님은 이제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시고자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하셨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누구든지 차별하지 않으시고 의인으로 인정해주시는 것이 바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다. 하나님은 전혀 자격이 없는 우리를 순전히 십자가를 통한 은혜로, 우리 자신은 아무 대가를 치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자 길을 열어놓으셨다.
비록 우리가 육신의 죄성과 연약함으로 인해 바울과 같이 자신을 사망 가운데 있는 곤고한 자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오늘도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길을 갈 수 있다.
10월 7일
아브라함의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 (로마서 4:18-25)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찾아오셔서 나의 소원을, 그러나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성취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면 얼마나 놀랍고 기쁠까 상상해보자. 그런데 약속해주신 일이 몇 년을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대한 의심이 생기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보자. 아브라함은 75세 되던 해에 하나님으로부터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을 받고 무려 25년을 기다려서 아들 이삭을 얻었다. 그는 백세가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을 알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는 1)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2)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3)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신뢰의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로 인정받았는데 이것은 아브라함 이후 태어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고 인정받을 것을 알려주기 위한 본보기가 되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무엇인가?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한 말씀을 믿었다. 아들을 주실 뿐 아니라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는 말씀을 믿었다. 자신의 육체적 상태는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었으나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것은 인간의 눈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반드시 이루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영적 생명을 소유한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해주신 것을, 구원받고 거듭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큰 민족으로 이 땅 위에 이루어 가실 것을,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마지막 때에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이 모든 일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랑과 공의로 이루어 가심을 믿는다.
10월 8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 (로마서 5:1-6)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관계의 회복
때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생기거나 관계가 좋지 않아 불화하게 될 때 우리는 괴로움을 겪는다. 사람 사이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선 더욱이 그렇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자 하셨으나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지음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인간은 영혼의 곤고함 가운데 수고로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셨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관계를 회복시켜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화평과 은혜를 누리게 하셨는데, 마치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는 그 사랑을 가득 받으며 행복하여 웃음꽃이 피어나는 가정의 모습으로 비유해볼 수 있겠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 그 누구보다도 환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은 후 기꺼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난의 길을 가면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울과 같은 극심한 고난을 받지는 않지만 이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다.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고 자신을 연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소망을 갖기 때문이다. 사랑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이 자녀인 우리에게 환난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는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견디기 힘들고 낙심하게 되지만 그 고난을 통해 무엇을 얻고 이룰지 아는 사람은 그것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된다.
10월 9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다 (로마서 6:1-5)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성화의 삶
흔히 첫 인간인 아담을 첫 아담이라고 하고,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칭한다. 하나님의 눈에는 지구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들이 단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보이실 것이다. 즉 모든 인간은 첫 아담 안에 있어 잃어버린 사람이거나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 구원받은 사람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옛 아담 안에 있는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진정 거듭났다면 로마서 5장까지 온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고 의롭다 인정받은 우리는 성화된 삶을 사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6장부터 8장까지의 말씀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죽게끔 내어주던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용하시는 것을 통해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 나아가 그러한 사랑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5:20)고 고백하였고, ‘그런즉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롬6:1)고 묻고 있다.
하나님께서 핍박자 사울을 회심시켜서 사도 바울로 만드시고 많은 분량의 성경을 기록하게 하여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전해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불의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시는 확실한 증거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는 죄인인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감을 고백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으므로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함을 시인하며 고백한다.
10월 10일
의의 종 (로마서 6:12-19)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알고 여기고 내어드리라
사도 바울은 회심한 후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며 기꺼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종과 같이 헌신하였다. 사람이 죄를 따르면 죄의 종이 되고 물질을 따르면 물질의 종이 된다. 바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죄에 매이지 말고 자신을 의의 무기로, 의의 종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내면에 있는 죄성을 극복하여 죄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해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났음을 알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더 이상 죄에 매여 죄의 종으로 살지 않게 되었음을 알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더 이상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함을 알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자신에게 이루어져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기라고 한다. 자신에게 이 사실을 날마다 선포하며 인정하여 죄가 틈타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드려 하나님이 의롭게 사용하시는 의의 병기가 되라고 한다.
알고 여기고(받아들이고) 내어드림으로써 죄에 대하여 죽고 죄와 싸워 나가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과정이 성화의 과정이고, 이 과정 자체를 성화라고 할 수 있다. 알고 여기고 내어드리는 세 단계는 우리의 매일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삶으로 인도한다.
10월 11일
생명의 성령의 법 1 (로마서 8:1-11)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니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성령의 도우심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자신이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는 인간의 모습을 직시하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고 탄식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으로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를 원하나 육신으로는 죄의 길을 따르게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이러한 이중적 모습이 바로 인간의 실존이며 우리가 겪는 내적 갈등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한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육신 가운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에 속한 일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일들을 계속적으로 극복해 나감으로써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은 혼자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오직 믿는 사람 안에 계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때에만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 안에는 이미 성령이 계신다. 그러므로 매일의 삶 가운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인식하고 의지하며 의논하고 인도함을 받을 때 우리의 옛 사람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어갈 수 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여 사망의 길을 달려가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하여 생명과 평안을 누린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계셔서 매 순간 나를 이끌어주시고자 하심을 기억하고 자신의 모든 일을 성령께 맡겨보자. 내 생각, 내 판단을 앞세우지 말고 먼저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묻고 걸음을 내디뎌보자. 그럴 때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체험하며 변화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0월 12일
생명의 성령의 법 2 (로마서 8:14-17)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명의 법에 속한 자의 삶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2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증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고,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인 하나님의 상속자로 삼아주시며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다.
육신의 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면서도 그분이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부모가 주시는 무언가를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는 어정쩡한 모습의 자녀라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때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아버지의 권세를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도록 도우시고 이끌어 주신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함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의식하고 아버지께서 주신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며 살아가되 하늘에서 받을 영광을 기대하며 이 땅에서의 고난도 기꺼이 감수하기로 작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생명의 법에 속한 사람이다.
육신의 아버지를 부르듯 하나님을 아빠라고 조용히 불러보자. 하나님께서 사랑 많으신 아빠로 내 곁에 계시며 나를 바라보시고 나의 음성을 듣고 계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분의 영이 내 속에서 나로 하여금 자녀의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쳐주시고 사랑으로 이끌어가고 계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10월 13일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8:35-39)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리스도인의 확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새 생명을 얻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때로 그 사랑과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낙심하고 불안해한다. 사도 바울은 다섯 가지 질문을 하고 그에 대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승리를 보장하셨음을 확신시켜준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 아무도 우리를 대적하지 못한다.
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주신다.
3.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누가 고발하겠는가? - 아무도 우리를 죄 있다고 고발하지 못한다.
4. 누가 정죄하겠는가? - 아무도 우리를 죄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 심판하지 못한다.
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는가? -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등의 모든 것들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사도 바울의 선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어떠한 힘도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죄에 대하여, 육신에 대하여, 현재의 고난에 대하여, 악한 세력들에 대하여, 세상 핍박들에 대하여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고백하고 확신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살아가자.
10월 14일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성령 (로마서 8:24-30)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눈에 보이지 않으나 장차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소망한다는 뜻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이미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을 소망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며 살고 있다. 육신의 세상에 살면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망하여 인내하며 기다리기에는 우리가 너무나 연약한 것을 성령께서 아신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며 친히 간구하심으로써 그날까지 견디며 이길 수 있도록 도우신다.
때로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 놓여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고 막막해한다. 또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나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지 못하므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러할 때에도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는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고 용기를 더해준다. 우리는 무언가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앞에 놓여 있을 때 다른 이들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해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주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에라도 낙심하지 말자. 소망이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을지라도 실망하지 말자.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친히 모든 것을 주장하시어 마침내 선한 결과를 이루어주신다.
10월 15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로마서 9:19-24)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
사람들은 때로 자신을 생각할 때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여 기가 죽기도 하고,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교만해지기도 한다. 세상은 불평등한 것 같고,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가정환경이나 외모 또는 능력에 있어 부족한 것 같고, 부족함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장 자크 루소는 1754년 인간 불평등의 기원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인간의 불평등이 과연 어디서 유래하는지 추론해보고자 하였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의로우신 분이며 창조주로써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절대 주권을 가진 분이심을 말한다. 이 때문에 피조물인 인간이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 불의하다고 항의할 수 없음을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즉 토기장이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여러 모양의 토기를 만들고, 혹은 귀하게 혹은 천하게 쓸지라도 토기는 토기장이에게 항변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만드시고 선택하시고 사용하시는 일에 대하여 인간이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떠한 모양으로든 사용해주시는 것을 감사해야 하며,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식하고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도 바울이 알려주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의미는 귀하고 천한 용도의 구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진노의 그릇인지 영광을 받기로 예비된 긍휼의 그릇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귀한 그릇으로 쓰이는지 천한 그릇으로 쓰이는지에 관심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영광 받기로 예비해주신 긍휼의 그릇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에 집중하며 감사해야 하겠다.
10월 16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한다. (로마서 10:9-15)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되고, 이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 예수를 구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는 내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나의 주인이었던 과거의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나도 이제 그 분과 함께 살아나 새로운 내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믿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었던 삶은 죽었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 나의 주관자가 되시는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 앞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 앞에서 시인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제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김을 받고 구원받은 이들의 사명을 이사야 52:7 말씀을 인용하여 알려준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자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무언가 좋은 소식을 들으면 전하고 싶어진다. 그 소식이 나의 가족, 주변의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더욱 빨리 알려주고 싶어진다. 하물며 죄에서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된 소식이라면 우리는 이것을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빨리 알려주어야 하겠는가! 이 소식이 너무나 귀하고 복된 것이므로 이것을 전하러 다니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이사야가 고백하고 있고 사도 바울이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도 자신의 발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기를 소망하자!
10월 17일
이스라엘의 남은 자 (로마서 11:1-7)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 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빚진 자
이스라엘 분열왕국 시대에 남유다왕국의 왕 아합은 그의 아내 이세벨과 함께 우상 바알과 아세라를 열심히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들과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다. 선지자 엘리야는 우상숭배에 열심인 아합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보이고자 그 땅에 수년 동안 가뭄이 들게 하였고, 바알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 선지자 사백 명과 갈멜산에서 대결하여 모든 우상을 무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었다. 이에 분노한 아합왕과 이세벨의 살해의 위협을 피해 다니던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호소하는 엘리야에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어떠한 위기와 핍박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시는 자신의 신실한 백성이 있음을 엘리야에게 말씀하셨고, 이러한 남은 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어져가도록 섭리하고 계심을 알려주셨다.
사도 바울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 택함을 받고 남겨진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남겨졌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선택되어 구원받고 새 사람이 된 바울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 그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갚아야 할 빚진 자로 여기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가 타락하고 불의하여 정의가 사라진 것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고,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시기 위해 여전히 자신의 백성을 은혜로 구원하신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빚진 자의 심정으로 그 빚을 우리의 이웃에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갚아가야 하겠다.
10월 18일
거룩한 산 제물 (로마서 12:1-8)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니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흠이 없는 짐승을 잡아서 죽은 예물을 드렸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이제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권면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죄로부터 분리되어 거룩하고 정결해져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은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를 방해한다. 사도 바울의 시대나 지금이나 이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불의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권면한다. 우리가 사는 세대에서 본받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기에 필요한 은사들을 주셨는데 사도 바울은 이것을 우리의 몸에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각각의 지체들이 자기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때 건강한 몸을 유지하듯이 교회공동체의 각 지체된 우리가 자신의 기능을 잘 발휘하여야 교회 공동체,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가 건강한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 우리가 받은 각각의 은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신 것이므로 자랑할 이유가 없다. 다만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필요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고 내게 있는 은사를 내 것으로 생각하여 아낄 것이 아니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꺼이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나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 예배가 되기를, 내게 주신 은사를 교회공동체, 이 사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를 기도하자.
10월 19일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로마서 13:8-14)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날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나누어주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고, 불순종하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이신 예수님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을 베풀어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들이다. 아무리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빚이 우리에게 있기에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마땅한 본분이고 이웃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권면한다.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중심이 되기에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예수님도 거듭 말씀하셨다. 이러한 사람은 이 땅에서 지상의 삶을 살아감과 동시에 천상의 삶을 미리 맛보며 살아간다.
사도 바울은 또한 이 세상에서 천국 시민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한 삶을 살고자 애써야 함을 권면한다. 우리의 마음을 온통 빼앗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주님이 다시 오실지 몇 세대 후에 다시 오실지는 아무도 모르나 종말의 때는 반드시 올 것이므로 그 때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각자의 삶에 집중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때로 빈집같이 허전하고 메마르게 들린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기에 생명력이 있고 빈집을 가득 채우며 퍼져가는 빛과 같다. 오늘도 세상이 우리에게 입혀주고자 유혹하는 어둠의 옷을 뿌리치고 빛의 갑옷,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빛으로 살아가자.
10월 20일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 (로마서 14:1-10)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자
사도 바울 시대의 초대교회에는 믿음이 강한 이들과 연약한 이들 사이에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다. 로마서를 거의 마무리해가면서 바울은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 화목한 관계를 이루어갈 수 있도록 성도들에게 몇 가지 권면을 하고 있다.
그 당시 가장 빈번하고 심각하게 발생했던 것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한 시비였다. 신전의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 매일 시장에서 판매되었는데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이들은 이것을 먹었고, 어떤 이들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갈등이 생겼다. 또한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특정한 날들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절기나 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고, 어떤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바울은 믿음이 강한 이들이 믿음이 약한 이들을 이해하며 포용할 것을 말하면서 각자가 자신의 확신대로 행하지만 서로가 다를지라도 참고 용납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을 교훈하였다. 자신과 믿음의 정도가 다르고, 견해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된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비난해서는 안된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목사님은 “본질에서는 일치를, 비본질에서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가르쳤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무엇을 행하든지 행하지 않든지 그 기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 자신의 행함이 행여 다른 이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10월 21일
문안인사 (로마서 16:1-16)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고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블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 빌롬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마감하면서 로마의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와 함께 그동안 자신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동고동락한 사역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로마 교인들에게 보내는 이 편지(로마서)를 뵈뵈로 하여금 대신 전달하게 하니 뵈뵈를 환영하고 도와 즐 것을 부탁하였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놓을 정도로 열심히 수고했음을 말하고 있다. 그 외에 약 24명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들 중에는 여자도 여러 명 있고 로마 황실과 관련 있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기독교가 일찍이 로마 황실에까지 전파되었음과 당시 로마 교회 내에 여성의 활동이 많았음을 암시한다. 언급된 이들 중 대부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던 사람들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바울이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문안 인사를 하는 것은 이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수고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신앙적으로 귀감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언급한 많은 이름을 보면서 당시 순탄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했던 이들의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생각해보게 된다. 하나님의 일은 여러 믿음의 사람들의 동역으로 이루어진다. 바울의 귀한 사역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처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돕는 이들이 없었다면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도 주의 일을 할 때에 자신을 돕는 자를 귀하게 생각하고 배려할 뿐 아니라 스스로 다른 이들을 돕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바울이 개개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일일이 이름을 언급하며 문안 인사를 전했듯이 우리도 성도 간에 세심한 사랑과 관심으로 문안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
10월 22일
전도의 미련한 것 (고린도전서 1:18-25)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십자가의 도
당시 고린도교회는 여러 파벌로 나뉘어 분쟁을 일삼았는데, 어떤 이는 바울에게, 어떤 이는 아볼로에게, 어떤 이는 게바(베드로)에게, 어떤 이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하며 서로 갈등하였다. 고린도교회와 같은 분쟁은 오늘날 우리 안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분열과 분쟁이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를 드러내고자 하는 교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지적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을 권고하였다.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분열하고 분쟁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다시금 십자가의 도를 강조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드러나는 표적과 지혜를 구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영적 분별력이 결여되어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고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믿는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십자가,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못 박히심으로 인간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전하는 전도는 미련하게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십자가를 통하여 죄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이 표현하신 가장 큰 사랑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십자가로 구원받은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를 기뻐하자!
10월 23일
하나님의 방법 (고린도전서 1:26-31)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자랑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십자가의 도’가 구원의 근본인 것과,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임을 설명하면서 성도들의 분쟁은 ‘십자가의 도’를 따르지 않고 세상 지혜를 따르는 어리석은 일임을 책망하였다.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기준은 외모나 학식, 재능, 물질과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약하고, 보잘 것 없고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가게 하신 것은 이를 통하여 세상에서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 재물이 많은 자들, 권력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지혜나 재물이 그 자체로 나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소유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자들, 권력자들, 재물이 풍성한 자들을 택하지 않으시고 부끄럽게 하시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지혜나 권력, 재물을 믿고 쉽게 교만해지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행여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교만하게 하며 영혼을 퇴락시키는 세상적인 것들을 자랑하며 살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자.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는 ‘십자가의 도’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기꺼이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자랑으로 삼자.
10월 24일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린도전서 3:16-23)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성전됨의 의미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향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강하게 묻고 있다. 그들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하기 위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고린도교인들을 책망하는 말이기도 하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시내산으로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에게 성막을 지을 것을 명령하셨다. 성막 안에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고, 지성소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과 만나를 담은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넣은 법궤를 두게 하였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어떤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를 증거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관해두라고 하신 그곳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였다.
이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하셨다.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에게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광야생활을 이끌어 가신다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주셨다. 구약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성막, 성전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이 거룩한 영, 곧 성령으로 직접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매일의 삶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자.
10월 25일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은사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또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 증인으로서의 삶은 서로 사랑하는 것임을 알려주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제자들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주신 본래의 의미를 망각하고, 이것을 자신의 자랑으로 삼고 남용함으로써 갈등을 빚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은사의 목적과 다양성, 통일성을 언급하면서 더 큰 은사, 바로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당시 가시적이고 현상적인 외적 은사들을 최고로 여기며 자랑하고 교만했던 고린도교인들에게 필수적인 권면이었다.
아무리 많은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사랑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그런 은사들이 아무 유익이 없는 외적인 겉치레에 불과하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없이 행하는 은사들은 겉으로는 그럴 듯하게 보여도 아무 능력도 없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자.
10월 26일
그리스도의 향기 (고린도후서 2:12-17)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내게 문이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생명에 이르는 냄새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 번째 방문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으나 직접 가지 못하고 대신 편지를 써서 디도에게 가져가게 하였다. 고린도교회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못했던 바울이 디도에게 고린도교회의 형편을 전해들은 후 다시 쓴 편지가 고린도후서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게 하신다고 말하며,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한다.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날마다 향을 피워 하나님께 향기를 올려드렸던 것과 인간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 짐승을 속죄제물로 태워서 그 냄새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던 것을 연상케 한다.
이제는 구약시대에 행하던 것 같이 향이나 제물을 태우는 냄새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필요가 없어졌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다 갚아주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후각은 가장 예민한 감각이다. 선교사들이 제3세계에서 선교할 때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그 지역의 독특한 냄새라고 한다. 우리가 누구에게든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한다면 그 향기는 맡은 사람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이 향기를 맡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생명의 길로 갈 것인데, 생명의 길을 거절하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것을 우리의 사명으로 여기고,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퍼트리는 기쁨을 경험하며 살아가자.
10월 27일
질그릇에 담긴 보배 (고린도후서 4:6-12)
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내 안에 있는 보배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심으로써 어두움을 몰아내고 사물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하신 것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신의 영혼을 덮고 있던 영적 무지함에서 벗어나 진리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바울이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깨달은 후 그 은혜를 귀한 보배로 여기며, 그 은혜를 받아 간직한 자신을 질그릇에 비유하였다. 우리의 육신적 생명은 질그릇처럼 깨어지기 쉽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보배,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결코 깨어지거나 꺾이지 않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보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인간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극심한 고난과 죽음의 위기를 당했을 때에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의 은혜를 전파하기 위해 받는 고난을 기꺼이 감당함으로써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내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삶의 여정에 곤경을 당할 때 좌절하게 되고, 자신의 육신적 삶이 점점 쇠퇴해갈 때 낙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 하루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 가운데 내 안에 있는 보배인 영적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자.
10월 28일
우리를 강권하는 그리스도의 사랑 (고린도후서5:14-17)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체험을 통해 바울은 십자가에서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았다. 자신에게 임한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 놀랍고 귀해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단 자신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임을 깨달았기에 이제 사람들을 육신을 따라 알지 않고, 육신적으로 대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주신 사람, 자신처럼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새로운 피조물로 인식한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새롭게 만들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살게 되었다. 누구든지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면 후회스럽고, 덮어버리고 싶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주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며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준다. 새로이 시작하는 한 주간도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자.
10월 29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린도후서6:1-10)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처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모든 것을 가진 자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에서 자신의 사도로서의 직분이 화해케 하는 역할임을 강조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 사실을 전하는 것이 바로 사도의 임무임을 설명하였다.
이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하고 화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강조한다.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과 화목한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거나, 형제자매 간에 서로 불화하거나, 하나님의 은혜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바울은 화목케 하는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수많은 고난을 받았음을 열거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자신은 항상 기뻐하는 자,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담대하게 고백한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었다. 하나님과 화목한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고, 지금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힘쓰며, 형제자매와 화목하기를 힘쓰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자!
10월 30일
육체의 가시 (고린도후서12:3-10)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노라 6 만일 내가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우리의 자랑
사도 바울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환상과 계시를 체험하였으나 자신을 위해서는 그 일을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핍박자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사도로 변화되었고,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신비한 은혜를 주셨음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사도권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증거로 삼고자 하였다.
한편 바울은 자신이 받은 환상과 계시로 인하여 교만해지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육체의 가시도 주셨다고 말한다.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세 번씩이나 그것을 제거해주시기를 기도했던 것에서 그 가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대답하셨고, 바울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쁘게 받아들여 자신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기를 원하였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자신의 약함보다는 강함을 자랑하고자 한다. 약한 것은 감추고 강한 것은 드러내며 교만의 죄에 빠지기 쉬운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랑은 우리 자신의 강함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이어야 한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원하는 결과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궁극적인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에게 더 큰 유익과 복을 주시는 것으로 드러남을 믿고 바울과 같이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하자.
10월 31일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고린도후서 13:5-13)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6 우리가 버림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권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서를 마무리하며 성도들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촉구한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볼품없는 외모, 부족한 언변술, 외적 권위 등에 불만을 품고 그의 사도권을 줄곧 시험해왔다. 이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시험해야할 대상을 잘못 선택했으며,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믿음이 올바른지를 판단하고 자신을 시험해보아야 한다고 일깨워주고 있다.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지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라는 고린도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충고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고,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버려진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 사실을 간절한 마음으로 전하면서, 그들이 이것을 깨닫고 받아들여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자신은 아무리 약하고 보잘 것 없는 형편에 처해진다하더라고 기뻐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기뻐하고 평안하기를 간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성도들에게 함께 하기를 축복하고 기도하며 서신을 마무리한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깊은 사랑에서 나온 바울의 책망과 권면을 우리에게 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 기뻐하고 평안하며 서로 위로하고 온전케 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