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사도행전 1:1-9)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느니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끔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자
사도행전은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이라고 시작함으로써 누가복음에 이어서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어떤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에게 보내기 위해 기록한 것임을 보여준다. 의사였던 누가는 사도행전 16:8-10절에 의하면 드로아에서부터 바울의 선교여행팀에 합류했다.
누가복음을 포함한 사복음서가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체로 계시는 동안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무엇을 가르치셨는지를 기록하고 있다면,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대로 성령이 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도들이 행한 사역과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 그리고 모든 이방인 지역으로 복음이 확산되는 과정을 보고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사도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기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서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라는 과제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파하며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게 하려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의 신분변화, 그리고 앞으로 갈 영원한 하늘나라가 준비되어 있음을 알리는 것이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과제임을 깨닫게 해준다.
7월 2일
성령이 임하시다 (사도행전 2:1-8)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위로부터 입혀질 능력
눅24장49절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고 기록된 대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그 외에 많은 사람들 약 120명이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마가의 집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면서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드디어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이 모여 있던 무리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나라 언어들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때에 이스라엘 밖의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는데 이들은 각각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의 언어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되자 매우 놀라워했다.
오순절은 밀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바치는 때에 열리는 이스라엘 민족 최대의 농경축제이자 3대 절기 중의 하나이다. 이 날은 풍성한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인 동시에 과거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 절기에 하늘로부터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써 이제 신약시대의 오순절은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절기가 되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신령한 능력으로 옷 입게 하셨다. 복음을 전파하며 이 땅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사명을 감당할 영적 능력을 주신 것이다. 우리도 오늘 하루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덧입기를 간구하자.
7월 3일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다 (사도행전 2:41-47)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모범적 신앙
하나님은 가장 적합한 시간에, 세밀하게 계획하신 그 때에 약속하신 일을 행하셨다. 약속하신 성령을 오순절에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들, 특히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사건에 대해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 되었다. 이들이 그 후 각기 자기가 사는 지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곳곳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워져 갔을 것을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어 가는 모습은 오늘날의 예배를 연상하게 해준다.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고 다시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모이고 흩어짐을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 확장되어 간다.
베드로는 위로부터 주시는 권능을 입고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날에 믿음을 고백하며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삼천 명이나 되어 최초의 믿음의 공동체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 이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는 가운데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을 뿐 아니라, 각 개인이 소유한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며 매일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증가하였다.
오늘 날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지 초대 교회의 모습과 비교해보자. 경건에 힘쓰는 공동체인지, 사랑으로 나누며 교제하는 공동체인지, 믿지 않는 이들에게서조차 칭찬을 받는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은 신앙을 지켜가도록 힘써야 하겠다.
7월 4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도행전 3:1-9)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뛰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자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있은 후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다. 나면서부터 못 걷는 한 사람이 성전 문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하였다. 베드로가 걸인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며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힘을 얻고 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베드로가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나약했던 그가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는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었다. 둘째,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여 구걸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던 이의 치유와 구원이다. 그는 날마다 성전 문 앞에서 구걸을 하며 살았지만 정작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고 물질만 구하던 영적 불구자이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육신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뿐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영혼의 질병까지 치유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 셋째,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베드로가 능력이 있어 고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의 능력이 그의 육신과 영혼을 치유하였다.
이러한 능력을 우리에게도 주셨는데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은과 금이 없는 것만 안타까워하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워하지 않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서 오늘 하루도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하자.
7월 5일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며 나누는 공동체 (사도행전 4:29-37)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며 회개할 것을 설교하자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부활을 전하는 것을 싫어하여 이들을 잡아 가두었다. 그러나 이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에 수천 명씩 믿게 되는 놀라운 복음전파의 역사가 일어났다.
사도들은 핍박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또한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도들은 열심히 말씀을 전하였고, 믿는 이들은 소유한 재산을 사도들에게 가져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였다. 바나바라는 사람도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왔는데, 그는 후에 안디옥교회에서 바울과 더불어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 받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헌신하였다.
자신이 가진 재산을 선교와 구제를 위해 쓰도록 내어놓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바로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이다. 성령이 임하셔서 값없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알게 하셨고, 그 은혜가 너무 크고 귀해서 자신이 가진 물질을 아낌없이 내어드릴 수 있었다. 물질만 나눈 것이 아니라 당시 성도들은 비록 외적으로는 핍박을 받았을지라도 자신에게 임한 영적 은혜를 나누며, 사랑으로 서로를 돌보며 지상에서 이미 천국의 삶을 누렸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처한 외적인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은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은혜와 사랑과 물질을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가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자.
7월 6일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사도행전 5:1-11)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가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위선적인 신앙을 경계하자
4장 후반부에 기록된 바나바의 헌신과 대조적인 사건이 5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초대 교회 공동체의 긍정적인 이면에 부정적인 모습도 함께 있었음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할 것을 각성시켜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도 영적인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들의 소유를 팔아 그 판값을 사도들에게 같다 내면서 판값의 일부는 감추고, 나머지만 드리면서 전부라고 속였다. 그들의 헌신의 동기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들을 내세우고 싶은 허영심, 명예욕에 있었다.
그들의 죄는 실제보다 더 영적으로 보이려는 위선에서 비롯되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위선적 헌신을 영적 분별력을 통해 알고 그들을 책망하였다.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것이라는 베드로의 책망을 들은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이어서 그 아내도 남편처럼 거짓을 말하다가 죽었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성령의 일하심으로 말미암아 놀랍게 부흥하며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공동체였지만 위선적인 신앙 또한 존재하는 불완전한 공동체였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을 기억하며 나의 신앙이 위선적이지는 않은지,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의식하기보다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는 것을 더 의식하며 신앙생활 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며 위선적 신앙을 경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겠다.
7월 7일
일곱 집사를 선택하다 (사도행전 6:1-7)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초대교회의 갈등과 해결
사도들이 박해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충만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하자 초대 교회공동체가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교회 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갈등을 해결하면서 오히려 교회의 조직이 갖춰지고 복음전파의 직무와 봉사의 직무가 분담되는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초대 교회공동체는 이스라엘 본토를 떠나 각처에 흩어져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헬라파 유대인들)과 본토를 떠나지 않고 살아온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회에서 생활이 어려운 성도들을 돌보아 주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이방 지역에서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불이익을 당하자 이로 인해 서로 간에 갈등이 생겼다.
열두 사도가 제자들에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 명을 택하여 성도들을 돌보는 일을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사도들은 구제와 봉사의 일들을 이들에게 맡기고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고자 함으로써 사역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정하였다. 일곱 집사를 선택한 후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으며 질적으로 양적으로 계속 성장하였고, 심지어 복음 전파를 박해하던 제사장들까지 복음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늘 날 우리의 교회공동체에도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지혜롭게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교회는 오히려 성장하고 든든히 서 갈 수 있음을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통하여 배우게 된다.
7월 8일
스데반의 순교 (사도행전 7:54-60)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들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일하심
스데반은 초대 교회공동체 내에서 구제하는 일로 인해 생긴 갈등을 해결하고자 선택한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고, 헬라파 기독교인 그룹의 지도자였다. 그는 행6:8에 기록된 것과 같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유대인들은 스데반과 심한 논쟁을 하다가 스데반의 지혜를 당하지 못하게 되자 율법을 거스르고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거짓 죄목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스데반은 대제사장과 거짓 증인들, 그리고 함께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서 이스라엘의 지나온 역사를 회고하며 아브라함과 요셉,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행한 이스라엘의 악행에 대해 설교하였다. 이것을 들은 무리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아 스데반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고, 스데반에게 무고한 죄명을 씌워 성 밖으로 내몰아 돌에 맞아 죽게 하였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보았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를 죽이는데 가담한 이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첫 번째 순교자가 된 스데반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사용하실 바울을 예비
하셨고, 복음이 이스라엘 밖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공의롭게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서 보게 된다.
7월 9일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 (사도행전 8:26-39)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 38 ...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결과
스데반이 순교한 후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전 지역으로 흩어졌다. 빌립도 박해를 피해 다니며 말씀을 전하던 중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표적을 행하였고, 그로 인해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을 가라고 지시하였다. 한참 복음을 전하며 다니는 중인데 광야로 가라는 성령의 지시에 빌립은 무척 의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에서 빌립은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에디오피아의 재무장관 격인 내시를 만나게 되었다. 이 내시는 아마도 수세기 전부터 에디오피아로 이주해 살던 유대인의 후손으로써 유대교에 충실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귀가 길에 수레에서 읽고 있었던 성경말씀은 이사야서 53장이었다. 빌립은 이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그 분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잘 풀어 설명해주었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인 내시는 믿음의 고백으로 즉시 세례를 받았다.
빌립이 자칫 성령의 음성에 소홀하여 광야 길로 가지 않고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전도하기를 더 기뻐하였다면 그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할 절묘한 타임을 놓쳤을 것이고, 그를 통해 에디오피아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기회도 놓쳤을 것이다. 오늘 우리도 성령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여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7월 10일
믿는 자를 핍박하는 사울 (사도행전 9:1-9)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예수님을 만난 사울
사도행전 8-12장은 1:8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지리적으로는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 사마리아, 시리아 안디옥까지 확장되어 가는 것과, 복음 전파의 대상이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전환되어 가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초대 교회에 불어 닥친 박해의 선봉에는 사울이 있었다.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하게 여긴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잡아서 처형하는 일에 앞장섰다. 다메섹은 예루살렘 동북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도시인데 박해를 피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사울은 이렇게 먼 곳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갈 만큼 박해에 열심이었다.
이런 박해자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하늘의 광채 속에서 들려오는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초대 교회의 극악한 핍박자 사울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충실한 일꾼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복음전도자 바울로 변화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을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렘브란트 등 유명한 화가들이 그림으로 표현하였는데, 카라바조의 그림이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난다. 주님은 핍박자까지도 변화시키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사용하신다. 우리에게도 주님으로 만남으로 인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소망하자!
7월 11일
복음 전파를 위해 택한 그릇 (사도행전 9:15-25)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은 갑자기 그를 둘러 비추는 빛을 보았고, 빛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빛과 음성은 태초의 하나님의 창조를 생각하게 하는 단어들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직접 찾아오신 것이다.
빛으로 인해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사울을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은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셨다. 아나니아를 만난 사울은 성령으로 충만해졌고, 다시 보게 되었으며 믿음의 고백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각 회당에 다니면서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전에는 동료였던 유대인들로부터 오히려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나님은 복음 확장을 위해 핍박자 사울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친히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사울을 통해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을 들어 그 분의 나라를 세워가신다. 사도 바울, 어거스틴, 요한 웨슬리, 마르틴 루터 등 하나님 나라를 위해 특별히 택함을 받았던 많은 이들이 비록 육신의 세상에서는 심한 고난을 받았으나 교회의 역사에서 빛나는 이름이 남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하늘의 영원한 면류관을 얻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위해 일꾼들을 부르시고 세우시며 변화시키신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사야 6:8의 고백과 같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는 사명적 신앙을 가져야 하겠다.
7월 12일
백부장 고넬료와 베드로의 환상 (사도행전 10:1-9)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메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확장되어 가는 하나님의 나라
고넬료가 있던 가이사랴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로마식 도시, 즉 로마의 행정부처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로마 병사 백명을 거느리는 높은 지위에 있었던 고넬료는 복음의 진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에 힘쓰는 사람으로 경건하고 관대하며 성실했다.
하나님은 고넬료를 통해 많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그에게 천사를 보내어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불러 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방인들과는 교제를 하지 않았는데, 이런 유대인의 선입견에 젖어 있는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자 하나님은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고넬료에게 간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모여 있던 그의 친척,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버리고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하나님은 복음의 확장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시고 준비시키신다. 이방인의 구원을 위하여 고넬료와 베드로를 준비시키셨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에게, 나아가 이방인들에게 까지 복음을 전함으로써 변화의 시대에 주어진 특별한 사역을 완성하였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어떻게 다듬으셔서 사용하실지 기대해보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옳지 못한 선입견과 자존심, 교만함을 고쳐주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우리를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고 맡겨드리자.
7월 13일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어지다 (사도행전 11:19-26)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다
스데반의 죽음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박해를 피해 흩어진 제자들이 사마리아, 베니게(페니키아)와 구브로(키프로스), 안디옥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중요한 유대인 공동체를 포함하여 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었던 안디옥은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인구 50만 명의 대도시였다. 이곳에서 복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고, 주의 손이 말씀 전하는 이들에게 함께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하였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면서 고향 다소에 머무르고 있던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며 교회를 세워나갔다. 바나바와 사울의 동역으로 안디옥 교회는 크게 성장하였고, 이곳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공동체가 비기독교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교회의 중심지가 되었고 바울의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의 출발지이자 선교 기지가 되었다.
스데반의 순교와 박해, 그리고 흩어짐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복음이 이방지역으로 확산되며 곳곳에 교회가 세워진 것을 보면서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 이에게 어려움과 환난이 닥칠지라도 사람의 시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다.
7월 14일
안디옥교회의 바울과 바나바 파송(사도행전 13:1-9)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
구브로에서의 전도 사역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새로운 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세우신 바울이 선교무대의 중심에 등장한다.
안디옥 교회에서 교사와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 성령께서 특별한 계시를 주셨다. 바나바와 사울을 택하여 세워서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것이었다. 교회는 이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한 후 구브로(키프러스)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 살라미(Salamis)로 보냈다.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한 살라미에는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었고, 유대인 회당이 여러 군데 있었다. 두 전도자는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면서 차츰 자연스럽게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에 마가 요한이 동행했는데, 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안디옥으로 와서 바울과 바나바를 도와 안디옥 교회를 섬기다가 1차 전도여행에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부터 히브리식의 사울(‘간구하다’라는 뜻)의 이름이 로마식의 바울(‘작은 자’라는 뜻)로 바뀐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바울의 생애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음을 알리는 표식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이 구브로에서 행한 첫 번째 사역은 전도를 방해하던 거짓 선지자 마술사 엘루마를 제압한 일인데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선교의 주역은 성령이시며, 인간은 성령 하나님의 조력자,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7월 15일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 (사도행전 15:30-41)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 (없음)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바울의 2차 전도여행
1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와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던 바울은 1차 전도여행 중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돌아볼 것을 바나바에게 제안하였다. 안디옥 교회는 이제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반면 다른 지역 교회들은 매우 미약하여 항상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를 걱정한 바울은 두 번째 전도여행을 가고자 한 것이다.
바울의 제안에 동의한 바나바는 이번에도 마가를 조력자로 데리고 가자고 하였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이며 1차 여행에 동행하며 도왔던 인물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마가는 버가에서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마도 선교여행길에서 겪는 고통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혼자 돌아갔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바울은 마가를 불신하게 되었고, 2차 여행에 다시 마가를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와 심히 다툰 후 두 사람은 갈라서게 되었다. 그후 바나바는 마가를 조력자로 데리고 구브로로 향했고, 바울은 실라를 조력자로 택하여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을 다녔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단이 방해한다는 것이다. 둘째,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동역자 사이에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 간에도 신앙의 근본적인 면에서는 일치하지만 실천적인 면에서는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이런 차이 때문에 갈등하고 마음이 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들의 실수와 실패, 갈등조차도 주관하신다. 마가의 실패,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은 오히려 선교 팀이 한 팀에서 두 팀으로 늘어나 선교의 지경을 넓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7월 16일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6-15)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성령의 지시에 민감한 사람
루스드라와 더베에서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고 2차 전도사역을 이어가던 바울은 계속해서 소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비두니아 쪽으로 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었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바울은 성령의 제지를 받아 소아시아로 갈 수 없었다. 이에 방향을 바꾸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 비두니아 지역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성령께서는 그 길마저도 제지하셨다.
이렇게 되자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드로아에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바울의 발길을 유럽으로 돌리게 하셨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바울은 즉시 그곳으로 떠나기를 힘썼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바울을 부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바울이 전도사역에서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울 일행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며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한 빌립보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만난 한 여인 옷감장사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여 빌립보 교회의 출발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바울의 전도사역을 위해 물질적으로 크게 헌신하였다.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성령의 지시에 민감하여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드리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
7월 17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16:24-34)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여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니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간수를 구원한 죄수
기도처로 가는 도중 점치는 귀신들린 한 여종을 만난 바울은 예수의 이름으로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고쳐주었다. 여종의 주인들은 바울 때문에 여종이 점을 쳐서 벌어다주던 수입이 끊기자 바울을 모함하여 고소하였고,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관원들에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며 기도하였다. 그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죄수들의 매인 것이 벗어졌다. 자다가 옥문이 열린 것을 본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갔을 것으로 생각하고 책임 추궁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죽으려하였다. 그때 바울은 자신이 도망가지 않았음을 알려주었고, 간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그 결과 간수와 그 집 모든 사람들은 믿고 세례를 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바울은 옥에 갇혀서도 기도하고 찬송함으로써 다른 죄수들에게 하나님 믿는 사람의 담대하고 평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자기에게 온 기회를 자기만을 위해 즉각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옥문이 열렸을 때 도망갔다면 간수는 자살했을 것이고, 그와 가족들은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도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하나님을 의뢰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신앙을 지녀야 하겠다. 눈앞에 보이는 유익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7월 18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사도행전 18:23-28)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히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전도자 아볼로의 변화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간 바울은 곧 다시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였다. 3차 전도여행의 핵심은 3년 동안이나 머물렀던 에베소에서의 전도사역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의 전도여행의 특징은 중요 도시, 해안의 항구도시들을 주로 다녔다는 점이다. 이런 곳들은 많은 사람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어서 복음 전파의 효과가 큰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가르쳤으며. 자신이 복음 전한 곳을 다시 들러서 그들을 재교육하여 믿음에 든든히 서게 하였다.
에베소에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볼로라는 유대인이 있었다. 그는 구약성경은 물론 헬라 철학과 웅변술, 수사학에 능통한 사람이었는데 에베소에 와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볼로는 정작 복음의 핵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되어 그들로부터 복음의 진수를 깨닫게 되었고, 이후 초대 교회의 핵심적인 전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변모하였다. 바울은 훗날 아볼로의 복음사역을 가리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고전3:6)라고 고백하였다.
아볼로는 많은 학문과 지식을 겸비한 사람이었으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였고,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즉시 아가야지방으로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 하나님과 복음 앞에서 겸손하고,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아볼로의 태도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7월 19일
요한의 세례와 성령의 세례 (사도행전 19:1-9)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더라 8 바울이 회장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에베소의 성령강림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에서 귀환하는 길에 에베소에 들러 복음을 증거했으나 지극히 짧은 시간 머물렀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장에 소개된 대로 바울이 떠난 후 도착한 아볼로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며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이들의 신앙이 불완전하고 미숙한 것을 보게 되었다.
에베소에 있던 신자들은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 세례에 대해서는 무지하였고 단지 요한의 세례, 물세례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냐는 질문이었다. 성령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대답한 이들에게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던 복음의 진리를 자세히 가르친 후 바울이 세례를 베풀고 안수하자 이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였는데,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이들은 거듭남의 체험과 성령께서 베푸시는 영적 은혜와 은사를 경험하였고, 이후 에베소 교회의 핵심 구성원이 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일을 가리켜 ‘에베소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은 단지 물로 세례를 받는 행위로만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 자신의 구주가 되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이제는 과거의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간다는 믿음의 고백의 표시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결시켜 주신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날마다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체험하며 살고 있는지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자.
7월 20일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의 여정 (사도행전 20:13-16)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혼자의 시간
드로아에서 바울이 말씀을 강론할 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삼층에서 듣고 있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죽는 사건이 생겼다. 이 청년을 바울이 다시 살려냄으로 인해 드로아에 있는 성도들은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큰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되었고, 교회의 큰 시험이 될 수 있었던 사건이 은혜롭게 해결되었다. 이튿날 바울은 드로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였는데 위의 성경 말씀은 바울이 밀레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간결하게 소개되어 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그의 일행을 배에 태워 먼저 보내고 자신은 해안 도로를 따라 걸어서 여행한 후 미리 약속한대로 앗소에서 일행과 합류하여 배에 승선하였다. 드로아에서 앗소까지는 약 40km 되는 거리이다. 바울은 혼자 이 길을 걸어가는 동안 지나온 험난한 선교여정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사명을 재다짐하고,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받게 될 환난에 대비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영적인 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믿음의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두고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깊은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귀한 일이다. 예수님도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결단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홀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이러한 시간을 갖기에 힘써야 하겠다.
7월 21일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고별설교 (사도행전 20:17-24)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 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의 신앙고백
앗소에서 바울과 합류한 일행은 미둘레네 → 기오 → 사모를 거쳐 밀레도에 이르렀다. 밀레도는 바울이 3년간 목회한 에베소와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바울은 오순절까지는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3차 전도여행에서의 귀환길에 에베소에는 들르지 않고, 대신 에베소의 장로들을 밀레도에 오게 하여 그들에게 고별설교를 하였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서두른 이유는 오순절을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모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마게도냐와 아가야지방의 교회에서 모금한 헌금을 속히 전달하여 예루살렘의 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설교하면서 자신이 유대인의 박해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누구에게든지 어디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음을 회고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데 그곳에서 어떤 고난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이미 성령께서 알려주셨지만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복음을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함을 알렸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바울의 신앙고백을 통해 바울의 인격과 용기, 믿음의 열정과 헌신을 느끼게 된다. 바울의 고백은 나태하고 무디어진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과연 우리가 오늘 신앙인으로서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할지 생각하게 한다.
7월 22일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는 바울 (사도행전 27:1-9)
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기를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 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않으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누가와 아리스다고의 동행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바울은 그곳에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투옥되었고, 드디어 그렇게 가기를 원했던 로마를 향해 죄수의 신분으로 떠나게 되었다.
외형적인 이유는 바울이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로마의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상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원하는 바울의 소망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붙잡혀가는 바울의 모습은 마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죄인과 같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로마로 가는 뱃길에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행하였는데, 누가는 사도행전의 저자로 마게도냐부터 줄곧 바울과 동행하였다. 누가는 바울을 로마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로마에까지 이르는 여정을 세밀하게 기록함으로써 복음이 어떻게 세계에 확장되어 갔는지 증거하고 있다.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인으로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된 적이 있으며,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투옥되어 있을 때에도 바울의 필요를 돌보아주었다.
누가와 아리스다고의 동행은 로마까지 가는 머나먼 뱃길의 위험과 죄수의 신분으로 끌려가는 곤고한 바울에게 도움과 위로가 되었을 것이며, 로마에서의 전도활동에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므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바울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모든 환경과 여건을 복음전파에 초점을 맞추어 이끌어 가셨음을 깨닫게 된다.
7월 23일
폭풍 속에서의 구원 (사도행전 27:30-44)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34 음식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 42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옳다 하였으나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사단의 방해와 하나님의 승리
로마로 향하는 뱃길에서 백부장과 선장은 바울의 충고를 무시하고 항해를 고집하다가 유라굴로라는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하였으나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에게 찾아와 아무도 생명에 손상을 입지 않으리라고 말해준 것을 전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안심시켜주었다.
14일이 지나서 그 배는 멜리데라는 섬 근처에 이르렀다. 배가 육지에 가까이 온 것을 눈치 챈 선원
들은 비겁하게 자신들만 살고자 배에 싣고 다니던 구명정으로 도망하려고 했다. 바울은 이들의 비겁한 행동을 간파하고 백부장과 군사들의 힘을 빌려 이들의 도망을 저지하였다. 백부장은 풍랑을 만나기 전에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하였으나 이제는 바울의 말이 옳았던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바울의 지시에 전적으로 순종하였다.
바울은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고 위로하면서 소망과 평안을 불어넣어주었다. 자신도 함께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권면함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으며 진정한 평안과 안전이 있음을 증거하였다.
바울은 신앙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위기에 처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였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죽음의 위험에서 구조된 이들 중 많은 사람이 바울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도 구원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사단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나아가 하나님은 바울 한 사람으로 인하여 275명을 살려주셨다.
7월 24일
멜리데 섬에서 일어난 이적 (사도행전 28:1-10)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러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멜리데 섬을 복음화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바울과 그 일행이 풍랑 가운데 도착한 섬은 멜리데섬이었다. 그곳 원주민들이 바울 일행을 맞이하여 불을 피워주었는데, 바울이 독사에 물리는 사건이 생겼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바다에서 살아 나왔을지라도 결국 뱀에 물려 죽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바울이 죽지 않고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 놀라 바울을 신으로 여겼다. 멜리데 섬에 원주민의 대표되는 보블리오라는 사람이 바울 일행에게 친절을 베풀어 그의 집에 묵게 하였는데, 그의 부친이 병에 걸려 누워있는 것을 바울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고쳐주었다. 섬 가운데 살던 다른 병자들도 바울을 찾아와 병 고침을 받았다.
이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해 바울은 보블리오와 원주민들에게 신적인 존경을 받게 되었고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바울은 당연히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놀라운 속도로 멜리데 섬 전체에 전파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 두 사건은 멜리데 섬을 복음화하기 위한 성령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알 수 있다.
전승에 의하면 보블리오는 멜리데의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가 순교했는데, 지금도 멜리데 (현재의 말타섬)에는 보블리오 기념교회가 서 있다. 또한 초대 교회가 박해를 피해 예배를 드리던 지하 묘지 카타콤이 발견됨으로써 멜리데 섬이 일찍이 복음화되었던 역사성이 입증되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모든 환경을 주관하시고, 세밀하게 계획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손길을 바울의 모든 선교여정에서 깨닫게 된다.
7월 25일
바울의 로마에서의 전도사역 (사도행전 28:23-31)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께 대하여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르리라 하더하 29 (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한 사람
로마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일반 죄수들과는 달리 따로 셋집을 얻어서 그를 지키는 군인 한 명과 기거하였다. 셋집에 두 해를 머무르며 바울은 그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담대하고 거침없이 가르쳤다. 자신의 지상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바울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복음을 전했을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애써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도 있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구원의 문 앞까지 갔으나 돌아서서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있다.
누가는 바울의 마지막 순간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고 셋집에서 2년 간 복음을 전했다는 말로 바울의 선교행적을 마무리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이 바울의 전기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 증거 사역이 당시 제국의 중심인 로마에까지 이루어지는 과정을 기록함으로서 기록목적을 완수하였다.
바울은 오늘날 우리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적인 장치들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음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지 바울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바울의 삶은 발전된 세상에서 많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며 편안히 살고 있으면서도 전도하지 못하고, 자신의 믿음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보게 해주는 거울이다.
7월 26일
바울의 감사와 기도 (빌립보서 1:3-11)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에 전도한 옷감 장사 루디아와 점치는 귀신들린 소녀(행16:13-18), 빌립보 감옥의 간수(행16:23-24)가 회개한 결과 세워진 마게도냐 지역 최초의 교회이다. 바울은 이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 가는 것으로 인해 큰 기쁨을 얻었다. 원래 바울은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으나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부르는 환상을 보고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인줄 깨달아 마게도냐 지역 빌립보로 가게 되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 기쁨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고백한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이 처음 그곳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게 된 때부터 바울이 옥중에 갇혀 있는 현 시점까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기도와 물질로 그의 사역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하며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적 사랑에 참된 지식과 총명을 겸비하여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깊은 사랑의 마음을 담아 기도한다. 나아가 빌립보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들이 되기를 간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지도자로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이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는 바울과 기도와 물질로 바울의 전도사역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빌립보 교인들 간의 아름다운 협력과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상호 간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 이루어야할 좋은 본보기가 된다.
7월 27일
그리스도의 겸손 (빌립보서 2:1-11)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교회의 일치를 위한 권면
빌립보서에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씀과 함께 기쁨, 기뻐하라는 단어가 자주 나와 기쁨의 서신이라고도 부른다. 빌립보교회가 몇 가지 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이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권면하고자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 바로 빌립보서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 간의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서로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것을 권한다.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손한 마음이 없이는 다른 이를 돌아볼 수 없으며 서로가 한 마음 한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겸손의 본으로써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세상에 오신 것이야말로 겸손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재자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신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예수님의 순종과 겸손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한 주로 섬기는 성도들이 서로 다투거나 분열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은 일이며,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로 연합해야 한다는 사실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을 따라 오늘 우리도 겸손한 마음으로 성도들 서로를 돌아보며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하겠다.
7월 28일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라 (빌립보서 2:12-18)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위한 권면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성도들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를 귀하게 여겨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가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구원받고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점점 더 온전하고 거룩한 믿음의 단계로 성화되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마음속에 소원을 일으키셔서 성도들로 하여금 소원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성도들 안에서 그 소원을 행하심으로 성도들이 자신이 소원하는 바를 행하고 이루게 하신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의 교제 안에서 연합하고 구원을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위해 우리 가운데 주신 소원을 이루고자 애쓸 때 성도 간에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해야 하고, 흠이 없고 순전하여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행할 때 이것이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일인가 깊이 생각해보자. 나아가 다른 이들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자.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방해한다.
7월 29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빌립보서 3:7-14)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나는 무엇을 자랑하는가?
사도 바울은 부유한 히브리인 집안에서 태어나 유명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고 유대 사회의 기득권층인 바리새파에 속해있었다. 세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엘리트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성장배경과 유대교 신앙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열성 유대교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 지금까지 자랑으로 여겼던 자신의 모든 육신적인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게 되었다는 가치관의 변화를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외적인 자랑거리를 내버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되어 일생동안 복음을 전하며 숱한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믿음의 인내를 하였다.
무엇이 바울을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고 귀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유대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특권들을 자신에게 유익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왔으나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방해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후 다시금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을 자랑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자 애쓰며 살았다. 만일 우리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외적인 것을 자랑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를 고백하지 못한다면 아직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
7월 30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립보서 4:4-9)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기쁨의 근원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였다. 옥에 갇혀 있는 고난 중에서도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신변을 염려해 걱정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자신이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비결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4:13) 바울 자신에게 있어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1:21, 갈2:20).
바울이 말하는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경험하는 기쁨과는 다른 것이다. 어려운 형편 가운데도, 힘든 일을 만났을 때에도, 병이 들어도, 가난해져도 기뻐하며 아무 일에든지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기쁨이다. 성도들은 이러한 기쁨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안에서 누리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알고 계시고, 우리의 간구를 듣고 계시며,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와 근원은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우리가 구하는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녀들에게 육신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뿐 아니라 평강을 주셔서 마음과 생각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가 생각해보자. 사도 바울처럼 주님이 나의 기쁨의 근원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자.
7월 31일
빌립보 사람들의 선물 (빌립보서 4:10-17)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사도 바울의 감사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빌립보 교인들의 지속적인 물질적 지원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자신이 단지 물질로 인하여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 속에 담긴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과 믿음 때문에 감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고백과 같이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법을 배웠고(11-13절),어떠한 형편에서든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음을 체험하였고,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을 사랑하여 물질로 도우며, 그의 복음 전파 사역에 동참한 그 마음과 믿음을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또한 자신의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함으로서 빌립보 교인들이 사랑과 신앙으로 더욱 굳게 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바울의 전도로 인해 세워진 빌립보교회의 교인들과 바울의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관계는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자신이 전도한 성도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하는 사도 바울과 자신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준 바울에게 항상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물질과 기도로 협력하는 빌립보 교인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도 본받고 따라야 할 사역자와 성도의 관계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