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사야 1:1-9)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여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회개의 길로 부르시는 하나님
구약성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창세기부터 에스더서까지는 역사서이고,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는 체험서이다. 그리고 이사야서부터 구약성경의 맨 마지막인 말라기서까지는 예언서로 분류한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미래의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예언하였고, 동시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 저지르는 죄악에 대해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죄악과 불신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면서, 그러나 회개하면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예언서들에는 이중적인 기대가 들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대가 그것이다.
이사야는 유다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에 이르기까지 약 60년 동안 선지자로 활동하면서 모두 66장으로 이루어진 이사야서를 기록하였다. 이는 신구약성경의 권수와 같은 숫자인데, 내용적으로도 1장부터 39장까지의 전반부는 마치 구약성경처럼 불순종하는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고 있고, 후반부의 27장은 마치 신약성경처럼 주님의 구원과, 자비, 위로를 강조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사야서를 축소된 성경전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옛날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보자.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은 채 세상길로 가기를 기뻐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은혜를 주시기 위해 회개의 길로 부르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
9월 2일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이사야 1:12-18)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의 탄식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명상록 ‘팡세’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냉철한 이성으로만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인격을 지니신 분으로서 자신의 백성으로 인해 때로 한탄하며 한숨 쉬기도 하고 후회도 하는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사야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이름이 밝혀주고 있듯이 이사야서의 핵심적 단어는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향해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탄식과 함께 죄인들을 용서해주고자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한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인생들과 변론할 필요가 없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죄악을 일방적으로 벌하지 않고 변론하자고 제안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에 앞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충분히 깨닫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안타까운 초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하면서 마당만 밟고, 헛된 제물을 드리며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자녀답지 못한 죄된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온전치 못한 예배와 믿음과 삶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자.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고쳐주시고자 우리의 진정한 회개를 탄식하며 기다리고 계신다.
9월 3일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이사야 2:1-4)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루실 평화의 왕국
이사야가 선지자로 활동하며 이사야서를 기록한 시기는 대략 BC 740-680년으로 추정한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기 약 20년 전부터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기 이전의 시기에 기록된 것이다. 이 시기의 한국의 역사는 고조선 시대에 해당한다.
이사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택한 백성을 더럽히고 있는 모든 죄를 철저하게 제거하시고, 거룩하게 된 그 백성들을 통하여 이루실 메시야 왕국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 때에는 세계 만민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모여 평화의 왕국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 예언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일을 알려주는 한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생들의 죄를 대신 갚아주시고 영적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주실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불의와 욕망,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자신도 날마다 부딪치는 내적인 죄성, 세상의 유혹과 싸우며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 가운데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공의와 평화, 거룩함과 사랑으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견고히 붙잡고 오늘도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가자.
9월 4일
성전에서 환상을 본 이사야 (이사야 6:1-8)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의 소명
웃시야 왕이 죽던 해, 곧 이스라엘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혼란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 이사야는 깊은 시름에 잠겨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자 성전에 나아갔다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였다. 이사야가 환상 중에 바라본 하나님이 계신 보좌에는 완전한 평화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장엄한 영광 중에 앉아 계셨으며, 천사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었다.
하나님과 그 분의 거룩함을 보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죄악과 부패한 모습, 나약함을 깨닫게 된다.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후 자신의 무지함을 회개하였으며,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을 보았을 때에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였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자, 마음이 깨끗지 못한 자임을 고백하며 회개하였고, 이사야의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천사가 제단에서 숯불을 하나 들어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고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다"고 선포하셨다.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아래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본 이사야는 이제 어두운 세상을 바라보았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소명을 감당하고자 결단하였다.
우리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자.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바라보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감당해야 할 일이 보일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며, 고치시고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9월 5일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 (이사야 6:8-13)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이 눈으로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이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 하시더라
남은 자
성전에서 본 환상 가운데 한 천사가 가지고 온 제단 숯불로 입술의 정결해짐을 받은 이사야는 곧 이어 하나님의 뜻을 전할 전달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그 소명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자신 속에 있는 죄성으로 인해 애통하는 자, 백성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여겨 슬퍼하며 회개하는 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자신도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과 은혜, 영광을 누리게 되는 자는 다른 무엇보다도 오직 성결함으로 주 앞에 나와 경배하는 자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남유다가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나 그 그루터기, 곧 거룩한 씨는 남기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이사야서 전체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는 ‘남은 자’ 사상의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부패한 세상을 심판하시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고자 애쓰는 이들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갈 그루터기로 남겨두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자 하신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무엇을 말하라고 하시는지 생각해보자. 하나님은 이 세상이 아무리 부패하고 창조질서에서 벗어나 있어도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그루터기처럼 남기신다. 이 땅에서 우리가 바로 그 그루터기로, 남은 자로 살아가야 하겠다.
9월 6일
임마누엘의 징조 (이사야 7:10-16)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는 네 하나님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임마누엘의 은혜
이사야는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던 이스라엘의 남쪽 국가인 유다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구약의 예언들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시대를 넘어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남유다 아하스 왕 때에 아람 왕과 북이스라엘 왕이 함께 남유다를 공격했는데 이기지 못하자 아람왕이 에브라임과 동맹을 맺고 다시 남유다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아하스 왕에게 가서 적들의 침입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고,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해 아하스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한 징조를 구해보라고 했으나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앗수르를 의지한 아하스 왕은 이를 거절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다. 아하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입을 통해 직접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의 몸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나 온 인류의 구원자가 되실 것임을 알려준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전쟁의 두려움 앞에 놓여 있음에도 하나님 의지하기를 거절한 아하스 왕은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하였으나 하나님은 구원과 은혜의 계획을 아하스 앞에서 선포하셨다.
하나님보다 세상적인 것들을 더 쉽게 의지하는 우리들의 모습, 그런 믿음 없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항상 은혜를 예비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늘도 하루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감사하며 살아가자.
9월 7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사야 9:1-7)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화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여호와의 열심
이사야는 남유다가 당면한 전쟁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올바른 길인지 알려주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위기상황을 세상 제국인 앗수르를 의지하여 해결하고자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적대적인 나라들을 철저히 심판하시는 한편 이 땅에 보내실 메시야를 통하여, 그리고 신실한 남은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것이며, 메시야가 어두움의 땅에 빛으로 탄생하실 것, 그리고 그가 이 세상 나라를 새롭게 하고 공의와 평화가 넘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메시야는 당시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이던 예루살렘이 아니라 멸시와 천대를 받던 지역인 갈릴리 땅에서 사역을 시작할 것이라고 예언되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대로 이루어졌다. 메시야의 출생과 생애, 죽음, 부활과 약속 등을 나타내는 ‘기묘자’, 자신의 영적인 가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영존하시는 아버지’, 이 땅에서 완전한 평화를 이루실 ‘평화의 왕’ 등의 이름 속에서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이 이미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은 이사야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알린지 700년 후 이 땅에 공의와 정의를 세우며,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열심을 내어 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9월 8일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사야 10:15-23)
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 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18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19 그의 숲의 남은 나무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20 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남은 자의 귀환
도끼나 톱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도구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앗수르를 도끼와 톱으로 사용하셨는데, 앗수르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하나님을 마음대로 움직일 것처럼 교만해졌다.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 마치 살진 자가 파리해지며, 병자가 쇠약해져감 같고, 삼림이 다 불타고 타나 남은 나무가 겨우 몇 그루 남아 있는 것 같은 참혹한 모습이 될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한다. 그러나 또한 대적이 위협해오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세상 권력을 의지하지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떠한가? 온 세상에 분쟁과 갈등, 전쟁이 그치지 않는 것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 속에 있는 욕심과 교만, 불신앙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고, 도구인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자리에 있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라고 말씀하신다. 나아가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실지 보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자.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음 받고, 하나님 편에 남은 자가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9월 9일
하나님이 이루실 평화의 나라 (이사야 11:1-9)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요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삼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꼐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은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우리의 소망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소망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기록되었다.
지금 이 소망에 이르려면 인내와 성경의 안위를 통과해야 한다.
인내와 안위는 고난과 슬픔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우리 영혼의 생명인 소망과 친구가 된다.
인내는 소망을 낳으며 소망이 있으면 부끄럽지 않다.
고난 가운데서 더 많은 인내심을 발휘할수록
더 큰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급함만큼 소망을 무너뜨리는 것이 없다.
성경의 안위, 즉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안위 또한 소망의 지주이다.
그것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 헨리 메튜의 글 중에서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세 번째 예언하면서 메시야가 오셔서 이룰 평화의 나라에 대해 노래한다. 그 날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의 질서가 회복되고, 공의와 정직이 판단의 기준이 되고,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며 해함이나 상함도 없고,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을 알려준다.
하나님 안에서 이러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러한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할 소망이고, 이 소망에 이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9월 10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이사야 12:1-6)
1 그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이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입술의 고백
이사야 12장은 7-11장까지 계속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심판과 구원 선포의 결론 부분으로, 남은 자들이 돌아오고 장자 임할 메시야 왕국을 소망하는 경건한 이들이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릴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인생들의 죄악을 심판하시지만 궁극적으로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용서받고 구원받은 인생이 하나님께 드려야할 것은 오직 감사의 찬양이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의 영혼 속에는 항상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어야 마땅하고, 구원의 하나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승리의 노래가 고백되어져야 하겠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받았을 때에도 이 노래를 불렀고(출15:2),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성전을 다시 건축하였을 때에도 이 노래를 불렀다. (시118:14)
오늘도 하루를 살아갈 때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녀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송이 그 입술에 있어야 하겠다. 나의 입에서 감사의 찬송이 나오는지, 불평과 비탄의 언어가 나오는지가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는 삶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기준이 된다.
9월 11일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이사야 14:24-27)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하나님의 경영
이사야의 예언 당시 앗수르는 B.C.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뒤 그 여세를 몰아 남유다까지 멸망시키려고 하는 등 그 세력이 절정에 달한 때였다. 당시 유다 왕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펴면서 할 수 있는 한 앗수르의 정복의 칼을 면해 보고자 애쓰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에 앗수르의 멸망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하나님의 경영’이라고 예언하는 이사야는 아하스 왕의 친앗수르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에 조금도 굽히지 않았고, 그의 예언은 B.C.612년 바벨론에 의해 수도 니느웨가 함락되면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이사야처럼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있을지라도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선포하는 선지자의 음성이 필요하다. 어떤 힘 있는 인간이나 나라, 조직이 세계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세계를 주관하고 계시고, 세계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뜻은 그 누구도 피하거나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야할 것을 가르치는 선지자의 음성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하나님의 생각에 일치되게 하며,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바가 되게 하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다.
9월 12일
은혜 베풀고자 기다리시는 하나님 (이사야 30:18-26)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리라 ...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30장 앞부분에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애굽을 의뢰한 유다에 대해 책망과 심판을 예고한 이사야는 이어서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의 약속을 전달하고 있다.
이사야의 예언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이 심판을 통한 유다의 멸망이 아니라 징계 후에 그들의 불신앙을 돌이켜 회개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인 축복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 그 기도에 대해 응답하시고 인도해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 범죄한 백성을 징계하면서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절묘한 조화를 이사야의 예언 속에서 보게 된다.
은혜주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하나님, 긍휼히 여겨주시기 위해 일어서시는 하나님, 상처를 싸매주시고 맞은 자리를 고쳐주시는 하나님,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신다. 징계가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징계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다시 나아가면 하나님은 기다리셨다는 듯이 즉각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주시고, 회복시키시며 일곱 배나 밝게 빛나는 빛을 영혼 속에 비춰주신다. 그러므로 어떠한 형편에 있던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은혜 베풀고자 기다리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 그 풍성한 은혜와 사랑 안에서 살아가자.
9월 13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이사야 32:1-8)
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5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 7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존귀한 자
구약성경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과 섭리에 따라 장차 이 땅에 보내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집약되고, 신약성경은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구원사역을 기록하고 있는데, 특별히 이사야서에는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 곳곳에 예언되어 있다.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며,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일차적으로 히스기야 왕의 종교개혁과 바른 정치로 인해 백성들이 누릴 행복을 예언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의의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과 그로 인해 성도들이 누릴 복된 삶을 알려준다.
공의와 정의는 무엇인가? 세상 학문에서 말하는 개념들이 있지만 성경적인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은 인간을 존중하며, 창조의 질서와 조화를 지키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사랑과 긍휼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존귀한 자’는 앞 절의 악한 자와는 대조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너그럽고 후하며, 언제나 존귀한 일을 생각하고 행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이루어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존귀한 자가 되어 정의와 화평과 구원을 사랑으로 이루어가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함께 행할 수 있게 된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도 존귀한 자가 되어 존귀한 일을 실천해나가자!
9월 14일
거룩한 길 (이사야 35:1-8)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 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하나님이 이루실 회복
이사야서는 1-35장, 36-39장, 40-66장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35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한 의로운 왕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하고, 나아가 메시야의 공의로운 통치로 말미암아 평화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을 예언하는 1부의 절정에 해당한다.
이사야는 인간의 교만과 불순종, 죄악으로 인해 황무지처럼 변해버린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마치 창조 시의 에덴동산처럼 새롭게 회복시켜주실 것임을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맹인의 눈이 밝아지고, 못 듣는 사람이 듣게 되고, 저는 자가 사슴같이 뛰게 되고, 말 못하던 자가 노래하게 되는 회복을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소망을 안겨준다.
장차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복은 하나님과의 화목, 풍요와 평화, 자유, 영원한 기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은 비록 불의하고 메마르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아 보이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악을 심판하시고, 믿음을 지킨 경건한 ‘남은 자’를 회복시키신다고 하신 그 약속을 붙잡아야 하겠다.
보이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눈을 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자. 이사야가 예언하며 노래한 하나님의 아름다움, 회복의 기쁨을 생각하며, 깨끗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만드신 거룩한 길을 다닐 것을 생각하며 이 땅에서의 잠시 잠깐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자.
9월 15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0:1-5)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타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람의 의와 하나님의 의
이사야40-66장은 흔히 이사야서 속의 신약 혹은 구약 속의 신약이라고 한다. 구약에 미리 나타난 구원의 복음(복된 소식)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의 사역 첫머리에 이사야서 40장 3-5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이사야서 1-39장까지는 자기 백성과 이방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 경고하면서 사람의 의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창세기 15장6절의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사람의 의라는 것을 깨우쳐 준다.
이후 40장부터는 하나님의 위로와 구속, 구원의 메시지를 들려주면서, 앞부분에서 사람의 의가 무엇인지 알려주던 것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알려준다. 하나님의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인간을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소식이 복음이라는 것이다.
40장을 읽다보면 마치 웅장한 교향곡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라고 시작하면서 인생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선포한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행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간의 의로 반응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야 하겠다.
9월 16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40:27-31)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자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때로 고난을 당하거나 어려운 형편에 처하면, 혹은 간절한 기도에 장기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능력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된다.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스러운 형편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모든 의심과 원망을 버리고 위로와 능력을 공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인 동시에 시간에 갇혀있는 존재이다. 때문에 어떤 원통한 일들이 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조급해지고,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원망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베드로사도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권고한다. (벧후3:8)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지체된다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원대한 시각으로 세상 역사를 바라보는 신앙관을 가지라는 말씀이라 하겠다. 이러한 신앙관을 가진 사람은 세상 역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여호와를 의지하고 바라보는 믿음을 붙들게 되고, 피곤한 중에도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얻게 된다.
지금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새로운 한 주간을 살아가며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자.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9월 17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이사야 41:8-14)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던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택한 백성을 도우시는 하나님
이사야 선지자는 40장 이후 ‘두려워하지 말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이스라엘은 세계를 정복하며 전진하는 이방 강대국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강대국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이방 우상들의 거짓됨’을 밝혀준다.
세상 역사에서는 강대국들이 일어서기도 하고, 또 다른 강대국에 의해 멸망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 모든 나라들의 흥망성쇠에 있어 목적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눈앞의 현실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의 목적들을 이루어가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나의 종’, ‘나의 벗’이라고 칭하신다. 벗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하브’는 허물없는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친구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나아가 하나님의 택하시고 구원하신 백성들인 우리들을 친밀한 벗, ‘아하브’라고 부르신다.
우리도 현실에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 다가올 미래에 대해 때로 두려움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를 벗이라 부르시는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의지하여 오늘도 하루를 담대하게 살아가자.
9월 18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 (이사야 42:1-7)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이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고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여호와의 종의 노래’라고 불리는 위의 말씀은 온유와 긍휼이 풍성하며 동시에 공의로우신 메시야의 성품에 대해 노래한다. 나아가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할 일들, 즉 소경을 보게 하고, 갇힌 자를 자유롭게 하며, 어둠 가운데 있는 이들을 빛 가운데로 나오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고, 구원받은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찬송하게 할 것임을 알려준다.
이사야는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야는 외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고 예언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성품을 표현한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 가장 좋은 것을 전하는 그분의 태도는 세상 권세자들과 달리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조용하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고 하며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 인간들을 그 연약한 상태대로 심판하지 않으실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예수님은 죄로 상한 인생을 심판하는 분이 아니시라 감싸주며 회복시키는 관용적 성품을 가진 분이시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한다’는 표현에서 등불을 의미하는 ‘피슈타’라는 단어는 베실로 만든 등심지인데, 인간의 생명을 문학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였다. 예수님이 죄로 인하여 양심의 빛을 잃고 연약해져 점점 사망의 골짜기로 빠져가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신의 영원한 생명으로 충만케 하실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기뻐하시고 붙드시는 귀한 아들을 종으로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할렐루야!
9월 19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이사야 4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