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위기 11:44-45)
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거룩하신 하나님, 거룩한 사람들
레위기의 히브리어성경 제목은 ‘와이크라’이다. ‘그리고 (그가) (모세를) (회막에서) 부르셨다’라는 뜻으로, 내용상 출애굽기와 이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히브리어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면서 레위기라고 이름 지었는데, 여기에 기록된 모든 규례들이 제사장을 포함한 레위지파의 관할 하에서 교육되고 시행되었기 때문이었다.
레위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민족이 시내광야에서 약 2년 동안 머물던 시기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시기는 광야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고 성막을 세우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한 행군을 정비하는 기간이었다.
레위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성막에서 말씀하시면서(레1:1), 죄 많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 안에서 살아갈 것인지 가르쳐주신다. ‘거룩(Holiness)'이라는 단어를 87번씩이나 사용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앞에서 살아가는 그의 백성들도 거룩해야 함을 강조한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가능해진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씻어내고 거룩함으로 옷 입자.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 가운데 거룩함을 회복하자.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매일의 삶이 예배로 드려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되기를 소망하자. 삶으로 드려지는 진정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이루어갈 것을 신앙목표로 세워보자!
11월 2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레위기 1:1-3)
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거룩 - 하나님의 성품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는 그 주제 상 연속성이 있다. 창세기에서 타락한 인간들이 출애굽기에서 구원을 받고 레위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성화를 배우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출애굽기에서는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그리고 레위기에서는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으로서의 예배를 가르쳐준다.
모세와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성막을 완성하자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고,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인간의 삶의 현장으로, 삶의 중심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이 직접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물을 잡아 죄를 대신 갚게 한 후 깨끗해진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셨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제물을 대신 잡아드릴 필요가 없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직접 제물이 되셔서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갚아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를 의지하여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함을 닮아가는 과제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거나 분리됨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속적인 것과 구별되고 분리되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거룩함이다. 하나님은 은혜와 거룩함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순종으로 나아간다.
11월 3일
소제의 예물 (레위기 2:1-3)
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웅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소제의 예배정신
레위기에서 제정하고 있는 제사들 중 소제는 히브리어로 ‘민하’라고 하는데 선물, 예물을 의미한다. 소제는 짐승을 제물로 잡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곡식을 사용하였다. 곡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사람이 수고하여 경작한 곡물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는 예배가 소제였다.
동물로 드리는 다른 제사도 흠이 없는 동물을 고르며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했지만 특별히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는 미리 미리 세심한 준비를 해야 했다. 오랜 시간 파종하고 돌보아 열매가 맺기까지 기다려야 함은 물론 추수한 곡식을 말리고, 다시 고운 가루로 만들기 위해 맷돌로 반복해서 갈아야 하는 수고가 요구되었다.
충분한 희생과 대가를 지불한 예배를 하나님은 귀하게 받으신다. ‘쉽고’, ‘편하게’, ‘간단하게’는 예배의 정신이 아니다. 번제로 드리는 예배가 우리의 생명, 전 존재의 헌신을 의미한다면 소제는 예배자의 정성, 애정, 지고지순한 마음의 헌신을 나타낸다. 소제로 드리기 위해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 과정은 그리스도인의 인내와 고난을 생각하게 한다.
물건에 짝퉁이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에도 진품과 짝퉁이 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외적인 자격은 다 갖추었지만 정작 예수님께는 책망을 들었던 짝퉁 신앙인들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매일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진품이 될 수 있도록 소제의 예배정신을 가져야 하겠다.
11월 4일
넣어야 할 것과 넣지 말아야 할 것 (레위기 2:11-15)
11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12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제단에 올리지 말며 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14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15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최고의 것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으로서의 제사에 대해 알려주시면서 소제로 예배드릴 때는 예물로 드리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더하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성령께서 예배 가운데 함께 하셔야함을 의미하는 한편 예배자에게도 성령의 임재로 인해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혀져야 함을 기억하게 한다. 유향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물에 향기를 더하기 위한 것으로, 사람이 자신에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같은 방법으로 만들지 못하게 하였다.(출30:37) 오늘 날 우리는 유향의 의미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의 향기 혹은 기도와 경건으로 이해한다.
또한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하였다. 순전하고 썩지 않게 하는 성질, 맛을 내고 변하지 않게 하는 성질을 가진 소금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상징하며, 민수기 18:19에서는 ‘영원한 소금 언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배를 드릴 때 제물에 소금을 치게 함으로서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였다. 한편 제물에는 부패를 촉진시키는 누룩과 꿀은 넣지 않아야 했다. 부풀게 하는 누룩은 죄를 상징하고, 꿀은 인간의 본성적인 쾌락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 가운데 반드시 있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기름과 유향, 소금이 있게 하고, 누룩과 꿀을 버림으로써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향기롭고 순전하며 거룩한 최고의 것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하자.
11월 5일
제단 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레위기 6:8-13)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10 제사장은 긴 세마포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11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 12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13 불은 끊임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것
레위기는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한 다섯 가지 제사와 그것들의 효과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의 구속을 기억하게 하는 일곱 가지 절기에 대한 설명으로 끝이 난다.
다섯 가지 주요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수 있게 드리라고 명령하신다.
다섯 가지 제사 중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 제사하는 방식을 말한다. 제물로 드릴 짐승을 흠 없는 것으로 잘 구별하여 준비한 후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잡아 모두 불살라 하나님께 향기를 올려드리는 제사이다. 번제는 오늘 날 우리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며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 제사드림으로 짐승의 희생을 통해 인간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상징적 행위를 하였으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제물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상징적 행위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만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주님을 위해 제물처럼 드려지는 우리의 삶의 자세, 형제자매를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희생적 삶의 자세이다.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고 항상 피워 있어야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불을 꺼뜨리지 말고 항상 피어 있게 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삶을 살아가자.
11월 6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제사 (레위기 7:11-15)
11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물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12 만일 그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려면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고 13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제물과 함께 그 예물로 드리되 14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15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관계의 회복
화목제는 히브리어로 ‘셀렘’이라고 하는데, 이는 ‘친하다’, ‘보답하다’는 뜻이다. 제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친밀, 화목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드리는 제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을 위한 제사이다.
화목제에 드린 제물은 예배자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누리게 됨을 축하하며 성소에 모인 무리와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하며, 다음 날까지 남겨두지 말고 그날 다 먹어야 했는데,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기쁨을 나누라는 의미이다. 즉 화목제는 1차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그리고 2차적으로는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목표로 한다.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화평을 이루기 위해 직접 화목제물이 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는 로마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희생의 결과로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친밀하고 화목하게 회복된 것이다.
예수님은 시간만 나면 홀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 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하나님과 화목해진 기쁨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며 잔치하는 화목제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며 최선을 다한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화목의 기쁨을 누리자.
11월 7일
제사장의 의복 (레위기 8:1-9)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함께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숫양 두 마리와 무교병 한 광주리를 가지고 3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으라 4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매 회중이 회막 문에 모인지라 ... 6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기고 7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걸쳐 입히고 에봇의 장식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8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9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 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우리가 입어야 할 옷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키우고 이끌어 가시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셨다.
먼저 성막을 건축하게 하셨는데,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이 만나 화해할 수 있는 성별된 장소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 먼저 인간의 죄를 씻게 하기 위해 다섯 가지의 제사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하며 제사를 집례할 수 있도록 중재자인 제사장을 세우셨고, 마지막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원칙들을 가르쳐주셨다.
제사장의 일을 감당하게 될 아론의 아들들은 먼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다. 몸의 더러움을 씻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마음도 깨끗이 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에베소서의 말씀과 같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기 위한 절차였다. 이후 제사장은 정해진 예복을 입는데, 예복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규례에 따라 정해진 옷은 옷을 입는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예배를 중재하는 제사장이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살아간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사랑의 띠로 온전하게 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모습에서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이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11월 8일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레위기 16:18-22)
18 그는 여호와 앞 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19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 20 그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드리되 21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에 보낼지니 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신적인 교환
레위기에서 거룩함이라는 단어와 함께 또 많이 나오는 단어는 피이다. 생명, 희생, 고통, 속죄 등을 상징하는 피흘림이 없이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피를 제단에 뿌리는 등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낯설고 잔인하게까지 느껴지는 레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경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피로 상징되는 희생과 헌신 없이 하나님께 은혜받기 원하고, 편안하게 믿음생활 하기 원하며, 세상의 즐거움과 분리되지 않은 채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구약시대에 예배자는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제물로 드려질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였다. 안수는 죄를 전가하는 행위로 안수하는 자와 제물이 동일시되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것을 ‘즐거운 교환’, ‘신적인 교환’이라고 표현하였고, 신학자 칼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가져가시고 대신 우리에게 주님의 풍요로움과 영광스러움을 주신 십자가를 ‘화목의 장소’라고 표현하였다.
십자가에서 지상 최대의 맞교환이 일어났다. 이사야 53장5절의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징벌을 받아 우리가 용서를 받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이 상하였으므로 우리는 치유되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적 교환을 기억하며 올 한해도 그 은혜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기쁘게 살아가자.
11월 9일
너희는 거룩하라 (레위기 19:1-3)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거룩함을 훈련하자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시지만 인간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결코 설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옷처럼 덮어 감싼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우리를 깨끗하다고, 거룩해졌다고 인정해주신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뜻이다. 레위기의 핵심은 거룩,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규례와 예배법을 주셨고, 예배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갈 수 있게 하셨다.
올 한 해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 삶 가운데 어떻게 거룩함을 이루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하나님과의 관계, 사랑과 섬김의 대상으로서의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야 할 ‘관계의 거룩’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루, 한 달, 일 년, 일생의 시간 속에서 주님을 위해 구별한 시간과 날이 있는지에 대한 ‘시간의 거룩’도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나아가 매일 매일 무엇을 공급받아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힘을 내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며 ‘공급의 거룩’에 대해 생각해보자. 늘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무엇을 갈망하며 기대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생각의 거룩’에 대해서도 점검해보자.
우리 모두 관계, 시간, 공급, 생각에서의 거룩함을 훈련하여 하나님 닮은 진품 명품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하자!
11월 10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19:13-18)
13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니 16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리하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웃사랑으로 완성되는 거룩
‘나 여호와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레위기는 거룩의 교본이며, ‘임마누엘의 축복’, ‘죄사함의 은혜’, ‘거룩한 삶에 대한 요청’이 그 중심주제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자 성막을 만들게 하셨고, 직접 성막으로 찾아오셨다. 성막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능하게 되었다. 레위기는 예배 때 영광으로 임하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 뿐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에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의 모든 면에서 항상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아야 함을 상기시켜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임재하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제사제도를 통해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레위기에서 말하는 거룩은 일차적으로 ‘구별됨’이다. 성도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을 닮아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셔서 부모와 자녀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셨고, 자녀된 우리에게는 아버지인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야 하는 것이 요구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이다. 우리가 세상적인 이기심과 욕망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을 닮아간다. 즉 ‘분리’에서 시작된 거룩은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 완성된다.
11월 11일
느부갓네살 왕궁으로 잡혀간 소년들 (다니엘 1:1-7)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고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고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하나님의 계획과 사탄의 계획
이스라엘 포로시대부터 대종말까지의 세계사 전개과정을 계시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하나님 여호와가 전역사의 절대주권자이시고 그분께 대한 신뢰와 순종만이 인류 구원의 길임을 제시하고 있는 다니엘서는 기원전 500년 경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시대와 바벨론에서 고향으로의 귀환이 막 허락된 귀환시대 초기의 격변하는 역사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지혜로운 소년들을 데려다가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3년을 가르친 후에 왕의 앞에 세워 왕을 돕는 나라 일을 맡기려고 계획하였다. 어린 나이에 잡혀간 이들의 이름은 각각 신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재판관이시라, 하나냐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미사엘은 주님 같은 이가 누구인가, 아사랴는 여호와께서 도우신다는 뜻이다.
이들은 바벨론에서 강제로 바벨론식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신 벨이 그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뜻의 벨드사살로, 하나냐는 월신의 명령이라는 뜻의 사드락으로, 미사엘은 아쿠 신과 같은 이가 누구인가라는 뜻의 메삭으로, 아사랴는 느고 신의 종이라는 뜻의 아벳느고로 개명되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이방 땅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장대한 구속계획을 선포할 선지자로 세우고자 바벨론으로 보냈으나 사탄은 이방신을 섬기는 바벨론의 제사장으로 만들고자 그의 이름을 바꾸고 이방학문을 익히게 하였다.
오늘 하루를 지내며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계획은 무엇인지 숙고하며 그것을 방해하는 사탄의 계획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자.
11월 12일
다니엘에게 은혜를 베푼 환관장 (다니엘 1:8-17)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다니엘과 친구들의 신앙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바벨론에서 해야 할 바를 분명히 알았다. 그들은 바벨론의 이방 풍습에 물들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순전하게 지키고자 왕이 제공하는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고자 했다. 이 음식들은 이방신들에게 바쳐졌던 제물이었고, 유대인의 규례를 거스르는 이런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열흘 동안의 음식시험으로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자 한 어린 믿음의 용사들을 지켜주셔서 환관장에게 은혜를 입게 하였고, 음식에 상관없이 더 아름답고 지혜롭게 만들어주셨으며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도 주셨다.(1:17) 3년 후 이들이 왕 앞에 나아갔을 때 그 지혜와 총명이 다른 사람들보다 열배나 나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1:20) 다니엘은 이때부터 무려 왕이 4번(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이나 바뀌도록 이방 나라에서 살면서 높은 직위에서 나라의 일들을 돌보는 특별한 인생을 살았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질서를 대적하는 세속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여기에 휩쓸려 믿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롬 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문화와 방식에 휩쓸리지 않을 것을 결단하자. 그리하여 신앙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쁨을 잃지 않도록 하자.
11월 13일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다니엘 2:16-23)
16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17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18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19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20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택한 자를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
다니엘과 친구들은 적국인 바벨론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방문화를 익히고 바벨론의 술객들과 같은 것을 배우는 일을 무려 3년이나 해야 했다. 하나님은 이들을 하나님의 증인으로 사용하시기 위해 3년 동안 이들을 훈련하시며 신앙으로 무장시키셨다.
느부갓네살 왕이 재임한지 2년째 되던 해 한 꿈을 꾼 후 그 꿈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자 하여 바벨론의 제사장(술객)들에게 꿈을 해석하라고 명령하면서 꿈의 내용은 말해주지 않았다. 꿈을 해석하지 못해 바벨론에 있는 모든 술객들이 죽임을 당할 위험한 처지에 놓이자 다니엘이 왕에게 해석을 알려주겠다고 자청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실 때가 되었다.
다니엘은 친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자신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뜻하는 바를 환상을 통해 알려주셨다. 다니엘은 이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반복적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안에서 동료들과 합심하여 기도하는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세계사를 이끌어가는 자신의 계획을 알게 하셨고, 다니엘은 기도 응답 후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올려드렸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사용하신다. 또한 겸손한 자를 들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다니엘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11월 14일
느부갓네살의 꿈 (다니엘 2:27-35)
27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 29 왕이여 왕이 침상에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할게 하셨사오며 30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에게 알려 주려 하심이니이다 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다니엘의 꿈 해석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느부갓네살 왕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바벨론 제국의 왕이 된 느부갓네살은 제국의 장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2:29) 하나님은 단순히 바벨론의 장래 뿐 아니라 미래의 세계 역사에 대한 계획을 환상을 통해 보여주셨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권세자도 결국 우주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 아래 있음을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큰 신상을 보았는데, 금으로 된 신상의 머리는 바벨론과 느부갓네살을 가리키는 것이고, 은으로 된 가슴과 팔은 그 후 이어질 메데 바사 왕국을 가리킨다. 청동으로 된 배와 허벅다리는 헬라 세계이며, 철로 된 두 다리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어지는 로마제국을 의미한다. 철과 흙으로 된 발은 부서지기 쉬운 혼합으로 말세에 임할 왕국들을 의미한다. 이 환상은 세계 역사의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점점 더 약한 재질로 변해가는 비관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다니엘을 보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을 생각하게 된다. 두 사람은 모두 이방 나라에 잡혀간 신분이었으나 이방 문화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고자 애썼고, 왕의 꿈을 해석하여 나라의 통치자의 자리에 올라갔다. 마침내 요셉은 민족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큰 민족이 되게 하는 일에, 다니엘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며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는 일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문화 가운데 살고 있으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세상 문화에 물들지 않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을 지키는 이들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11월 15일
왕이 다니엘을 높이다 (다니엘 2:44-47)
44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나라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 46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48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49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
하나님이 세우실 한 나라
느부갓네살 왕은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자신의 꿈의 내용과 그 정확한 해석을 제시한 다니엘에 대해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는 대제국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연소한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하며 예물과 향품을 선물로 주었다. 뿐만 아니라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고 고백하며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왕실의 종교자문기관에 속한 바벨론의 모든 술사 중 우두머리로 삼고 또 바벨론의 온 도를 다스리는 총리로 삼았으며, 그의 세 친구에게도 높은 관직을 주었다. 다니엘이 바벨론 모든 지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된 사실은 세계사를 전개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궁극적으로 승리를 얻게 될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세상의 나라들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이 세상의 나라는 아무리 강대한 권력을 가졌을지라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으나 하나님이 세우실 한 나라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우실 한 나라를 계시하셨는데 이것은 말세에 세우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영원히 살아갈 그 나라를 의미할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세적, 육신적 세상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적인 나라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게 하실 것을 보여주고 계신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이미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영적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이루어진 영적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믿음의 확신이 우리 안에 있기를 소망하며 믿음을 세워가자.
11월 16일
세 친구들의 신앙고백 (다니엘 3:13-18)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
느부갓네살 왕은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온 천하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섬기는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강한 절대자임을 과시하고자 금 신상을 세우고 누구든지 그것에 절하게끔 법을 제정하였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명령을 거역하고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느부갓네살은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라고 위협하며 이들을 회유하였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져 죽게 될 형편이었으나 이들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신앙을 고백하였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겠고 ... 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을까?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1)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자신들 안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을 거역하기 보다는 그 분 안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때로 위험한 경우에 처하거나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원하고 기도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쉽게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어떠한 형편에 처하더라도 다니엘과 친구들의 고백처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으로 성장해야 하겠다.
11월 17일
풀무불 속에 던져진 다니엘의 친구들 (다니엘 3:24-28)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베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 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들
금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한 죄로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진 세 사람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나왔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결박된 채로 불에 던져졌으나 불 속에 보인 모습은 결박되지 않은 네 명의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놀란 왕이 말하기를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았다고 하였다.
느부갓네살은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고 하며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한 세 친구를 협박하였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이 남왕국 유다를 점령할 때 자기 백성을 구원하지 못했던 유약한 신 여호와가 어떻게 풀무불 속에 던져진 자를 살릴 수 있겠느냐 하는 조롱과 풀무불 속에 던져진 자를 살리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이야말로 진정한 신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풀무불 속에서 온전하게 살아나오자 너무나 놀란 느부갓네살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세계 역사의 절대 주권자이시며 전능자이심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끝까지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자는 비록 잠시 고난을 받을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 하나님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사람 앞에서 영광을 얻게 하신다. 그러므로 신앙을 지키고 선을 행하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생길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는 믿음을 잃지 말자. 풀무불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지라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지켜주신다.
11월 18일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 (다니엘 4:19-27)
19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20 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21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었나이다 22 왕이여 이 나무는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고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23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 24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 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고난을 지나서 하나님 찬양으로
느부갓네살 왕의 두 번째 꿈을 또 다시 다니엘이 해석하고, 왕이 행해야 할 바를 권면하였다. 2장에서의 꿈이 국가와 세계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면 4장의 꿈은 느부갓네살 왕 개인에 관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비록 적국의 왕이지만 불행한 꿈의 내용이 왕에게 임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것은 죄악을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손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있었고, 반드시 회복시켜주실 것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이런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
1년이 지난 후 꿈을 통하여 계시된 일이 느부갓네살에게 임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유예기간 동안 겸손한 모습을 회복하지 못해 일곱 때 동안 왕좌에서 쫓겨나 짐승처럼, 미친 사람처럼 살다가 하나님이야말로 온 우주를 다스리며 역사를 주관하는 절대자이심을 깨달은 후에야 제 정신으로 돌아오고 왕좌도 되찾았다. 고난의 시간을 지나 진정으로 의로우시며 진실하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이다.
역사(history)는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의 각 지도자들이 자신이 가진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깨닫고 겸손한 자세를 갖게 되기를 기도하자. 나아가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 교만이 가장 큰 죄임을 깨달아 늘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자.
11월 19일
벨사살 왕이 베푼 잔치 (다니엘 5:1-6)
1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2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3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 4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5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6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7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 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진노
다니엘서 4장과 5장 사이에는 약 30년의 시간 간격이 있다. 느부갓네살과 그의 손자 벨사살의 행적을 비교하기 위한 의도로 긴 시간적 간격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기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느부갓네살의 손자 벨사살 왕은 귀족 1000명을 모아 놓고 잔치를 열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 은 등으로 만든 성물들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먹고 마셨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사용하는 그릇들로 먹고 마시면서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우상들을 찬양하는 최악의 불경스러운 잔치였다. 벨사살은 자신의 잔치를 위해 성전에서 가져온 그릇을 사용하면서 아마도 자신을 하나님보다 우위에 두고 세상의 가장 위대한 권력자라고 착각하는 교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교만하고 어리석은 왕을 그대로 두시지 않았다. 한창 잔치가 무르익어 갈 때
사람의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하얀 벽에 글자를 썼다. 이 모습을 본 벨사살 왕이 너무 놀라 얼굴빛이 변하고,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였다. 17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는 이 장면을 [벨사살 왕의 연회]라는 제목으로 그려놓았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매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혹시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는 않은지, 거룩한 것을 속되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하겠다.
11월 20일
벽에 쓰인 글자와 다니엘의 해석 (다니엘 5:18-28)
18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19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20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21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 22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23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24 그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25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나님의 저울
다니엘은 벽에 쓰인 글자를 해석하기 위해 벨사살왕 앞에 나아왔다. 다니엘은 먼저 왕의 허물을 책망하면서 그의 조부 느부갓네살 왕에게 있었던 일들을 회상시켰다. 조부인 느부갓네살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결코 모독하지 말고 존경할 것을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잔치자리에서 성전의 기물로 술을 마시며 각종 바벨론의 우상들을 찬양한 것은 벨사살왕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보여준다. 다니엘은 벨사살왕이 여호와를 모독하며 교만하게 행한 것이 바벨론 멸망의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벽에 쓰인 글씨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베레스)이라는 히브리어였는데 수를 세었다, 무게를 재었다, 나뉘어졌다는 뜻이다. 즉 ‘메네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것이고,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보였다는 것이고, 우바르신(베레스)은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사람에게 주어졌다는 뜻이었다. 그날 밤 벨사살은 죽임을 당하였고 메데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차지함으로써 벨사살은 불의한 행위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다니엘은 자칫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담대하게 벨사살왕의 허물을 책망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신앙의 용기를 보여주었다. 세상에 대해서는 담대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보호해주신다. 벨사살왕은 무게를 재었는데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보였다. 나의 믿음은 과연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았을 때 어떠할지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11월 21일
사자굴 속의 다니엘 1 (다니엘 6:1-10)
1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시기와 모략
벨사살이 죽은 후 왕이 된 다리오는 다니엘에게 가장 높은 직위에 주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다니엘은 지혜와 신실함이 그 어느 누구보다 월등하였으므로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바벨론에서 왕이 바뀔 때마다 매번 높은 직위에서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를 시기한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은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 했으나 그가 충성되게 행하며 아무 흠잡을 것이 없자 계략을 꾸몄다. 다니엘의 깊은 신앙심을 알고 있던 대적자들은 그가 자신의 믿음에 반대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용하였다. 앞으로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이외의 다른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나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는 법을 제정하자고 건의하였고, 신하들의 아첨에 우쭐해진 다리오왕은 이 법을 승인하였다. 다니엘은 법이 제정된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사자 굴에 던져져 사자의 밥이 될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늘 행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다니엘은 이방신과 이방문화로 가득 찬 적국에서 매일 세 번씩 기도하였던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날마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깊은 영성을 지켜왔기 때문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시기와 모략을 감당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고자할 때 믿지 않는 이들의 시기와 질투,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자 한 다니엘을 기억하자. 그리고 다니엘의 기도의 생활을 기억하자. 믿음으로 살고자 애쓰며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지켜주신다.
11월 22일
사자굴 속의 다니엘 2 (다니엘 6:16-23)
16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20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21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 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하나님의 대반전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 때문에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은 극적인 하나님의 보호로 몸에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나올 수 있었다. 오히려 그를 참소했던 대적자들은 사자 굴에 던져져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다니엘을 아꼈던 다리오왕은 비록 잘못된 결정으로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으나 밤새도록 금식하고 오락을 그치고 잠을 자지 않았다. 새벽이 되자 부리나케 사자 굴로 가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고 소리치며 슬피 울었다. 이는 다니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과연 완전한 절망과 죽음 가운데 있는 자까지도 살리실 수 있는, 다른 어떤 우상들에게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그런 권능을 소유하신 분이시냐는 뜻을 포함한 것이었다. 사자 굴에서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나는 다니엘의 모습은 다리오왕의 질문을 해결해주기에 충분하였다. 살아있는 다니엘의 음성을 들은 다리오왕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맹수의 위험에서 다니엘을 보호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사자 굴에서 살아나온 다니엘을 보면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대반전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을 지키는 이들을 보호하실 뿐 아니라 이들의 믿음을 통해 믿지 않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드신다. 다니엘의 믿음을 보면서 우리의 믿음이 과연 우리 주변의 믿지 않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끔 하는 영향력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11월 23일
다니엘이 본 네 짐승 환상 (다니엘 7:1-7)
1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또 보니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7 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
다니엘서의 전반부는 6장에서 끝나고 7장부터 후반부가 시작된다. 1장부터 6장까지는 다니엘이 이방나라에서 굳건하게 신앙을 지켜간 모습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왕들에게 관련된 일들을 해석함으로써 왕국의 장래에 대한 일들을 밝혔다면, 7장부터는 다니엘이 직접 받은 꿈과 계시를 통해 장차 이스라엘, 나아가 온 인류에게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벨사살이 왕이 된 첫 해에 다니엘은 꿈을 꾸고 환상을 받았다. 이것을 기록한 7장의 내용은 시기적으로 보면 앞에 기록된 5장, 6장보다 먼저 일어났던 일이다.
다니엘이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오는 환상을 본 것으로 인해 근심하며 번민할 때 천사가 나타나 환상의 의미를 해석해주는 것이 17절부터 기록되어 있다. 네 짐승의 환상은 바벨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장차 로마제국에까지 이어질 세상의 나라들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알려주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이다.
세상의 권세는 권세 잡은 자들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잠시 위임해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시간 계획에 의해 흥망성쇠를 거듭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계획하신 시간에 지상의 세상은 끝이 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평안과 안식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새로운 나라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알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살을 살아가야 하겠다.
11월 24일
요나의 소명과 도피 (요나 1:1-7)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 충에 내려가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생각
비둘기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요나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하던 선지자이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으나 그는 순종하지 않았다. 이방국가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 곧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적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고,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실천해야할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오히려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보다 자신의 인간적 생각에 의해 행동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는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져야 한다는 선민의식이 요나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시고 전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요나가 자신의 선입견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신앙을 고백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판단의 근거를 하나님 말씀에 두지 않고 자신의 편협한 경험과 지식, 생각에 의지하는 한 우리는 오늘도 요나와 같은 잘못을 하게 된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노력하는지 아니면 나의 생각을 앞세우고 있지 않은지 주의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숙한 믿음이 되기를 소망하자.
11월 25일
요나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징계 (요나 1:11-17)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야라드’와 ‘코람데오‘ 사이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도망하고자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3절에 ‘배에 올랐더라’고 기록된 히브리어 ‘야라드’는 올라간 것이 아니라 ‘내려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한 요나는 욥바로 내려가고(3절), 배로 내려가고(3절), 배 밑층으로 내려가고(5절), 바다 밑으로 내려가고(15절) 마침내 물고기 뱃속까지 (17절)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나님께서 큰 풍랑을 일으키셔서 안전한 도피처로 생각했던 배가 파선 지경에 이르렀고 급기야 선원들의 제비뽑기에 의해 재앙의 원인이 요나에게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요나의 도피계획은 완전히 무산되었고, 요나는 평소 자신이 무시하던 이방인들 앞에서 하나님께 범한 죄를 고백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상황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무소부재하신 전능자이시다. 이방인인 선원들이 격랑하는 파도에 못 이겨 요나를 바다에 던졌을 때 즉시 바다가 잠잠해지는 것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며 제사를 드리고 서원을 했던 것도 자연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체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만물을 자신의 뜻과 계획대로 움직이시는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 살아가야 한다. 어떠한 형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피해 내려가는 삶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함과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11월 26일
요나의 기도 (요나 2:1-10)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의 변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아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 뱃속에 3일이나 있게 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기도 속에서 자신이 겪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자세히 언급하며(2,3,5,6절). 그러한 고통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2,6,9절) 주신 소명에 대한 새로운 결단을 하였다(8,9절).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며,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일을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어가시며 모든 백성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을 구해주실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요나는 죽음과 같은 특별한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보다 성숙한 신앙으로 변화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요나가 3일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구출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역자들을 때로 고난을 통해서 훈련하시고,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며 사역을 준비시키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고난을 당할 때 좌절하고 낙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요나가 고난을 통해 변화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믿음의 성숙을 이루시고자 종종 고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신다.
11월 27일
니느웨 백성의 회개 (요나 3:3-10)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어떤 사람들은 요나서에 기록된 사건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어떻게 사람이 큰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 3일이나 있다가 다시 살아서 나오는 일이 가능한지 의문을 갖는다.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기적은 수많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영적 부흥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목사님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나라에 가서 그 나라가 곧 멸망할 것이라고 잠시 선포했는데 그 나라의 정치지도자로부터 모든 백성에 이르기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를 구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인 것이다.
요나가 니느웨 성을 다니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선포하였을 때 이방인인 니느웨 사람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며 금식하였고, 왕은 니느웨 성에서 모든 악행을 중지할 것을 명령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요나의 외침에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요나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며 기도한 요나를 살리셔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으나 선교는 하나님께서 직접 이루어 가는 것임을 니느웨 왕과 주민들의 회개를 통해서 보게 된다. 요나는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때 그것을 위한 도구로 택함 받아 사용되는 것은 택함 받은 자의 영광이요 기쁨이다. 오늘 하루를 지내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맡겨주심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순종할 것을 결단하자.
11월 28일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요나 4:4-11)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려고 그 그늘 아래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이기적인 신앙
요나가 그토록 가기 싫었던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하자마자 니느웨의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심판을 거두시자 오히려 요나가 화가 나서 하나님께 크게 불평하였다.
하나님은 요나를 교훈하시기 위해 박넝쿨과 벌레, 뜨거운 동풍을 사용하셨고, 요나로 하여금 하찮은 박넝쿨 조차도 얼마나 귀한지 인식시키시면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이끄셨다.
요나가 하나님께 화를 내는 모습과 이에 대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가 연상된다.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 아들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푼 아버지에게 불평하며 대드는 큰 아들의 모습이 마치 요나의 모습과 같다.
니느웨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을 불평하는가 하면 그 백성이 어떻게 되는지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겠다고 하는 완고한 마음을 가진 요나, 자신이 심지도, 가꾸지도 않은 박넝쿨을 아끼는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의 요나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요나는 오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이기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하나님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이웃에게 사랑과 관용을 베풀기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해준다.
11월 29일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누가복음 14:7-11)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
성경을 읽다 보면 반복해서 나오는 주제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주제이다. 얻으려고 애쓰는 자는 잃게 하시고 버리는 자에게는 얻게 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원칙은 세속의 원칙을 뛰어넘는다.
예수님이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식사하러 들어가셨다. 식사에 초대된 손님들이 서로 상석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비유를 통하여 겸손한 자세에 대해 가르치시며,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과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고자 하며 섬기는 자리가 아닌 섬김을 받는 자리에 있고자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3-44)고 말씀하셨고, 예수님 자신도 섬김을 받기보다 도리어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스승을 본받고 따르는 사람을 제자라고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배우고, 그분이 행하신 일,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다. 주님을 본받아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하게 형제자매를 섬기는 삶을 실천해보자.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이다.
11월 30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누가복음 17:5-10)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순종과 겸손
누가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수평적 관계인 이웃과의 삶에서, 그리고 수직적인 관계인 하나님과의 삶에서 가져야 할 덕목과 교훈들을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교훈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믿음의 분량을 더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큰 능력을 행할 수 있음을 말씀하시며 믿음의 질적인 면을 강조하셨다. 겨자씨는 매우 작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있어서 큰 나무로 성장하듯이 참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작은 믿음으로도 큰 능력을 행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고, 그러나 겸손하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할 것을 종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주인을 충실하게 섬기는 종은 어떠한 보상이나 칭찬을 바라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을 행한다. 주님의 제자들도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감당한 후 칭찬과 보상을 기대하기 보다는 다만 자신은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충실한 제자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순종과 겸손이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빌2:6-8)하심으로 우리에게 섬김과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다.
오늘도 하루를 지내며 하나님과 동등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종의 모습으로 인생들을 섬기며 희생하신 주님의 삶, 주님의 헌신적 사랑을 우리도 닮게 되기를 기도하며 실천하자.